말라리아는 얼룩날개모기(Anophelest사진·)가 옮기는 기생충으로 전염되는 감염병이다. 3일 WHO는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말라리아 백신 메트릭스M을 세계 두번째로 승인한다고 밝혔다./미 CDC

매년 전세계 6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에 대응할 무기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2년 전 세계 최초 말라리아 백신이 승인된 데 이어, 이번엔 연간 1억 회 분량 이상 대량 생산이 가능한 값싼 말라리아 백신이 허가를 받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일(현지 시각) 옥스퍼드 대학이 개발한 말라리아 백신 메트릭스 M(Metrix-M, R21)의 사용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말라리아 백신을 갖게 되는 날을 꿈꿔왔다”며 “이제 두 가지 백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140건의 말라리아 백신 임상시험이 진행됐지만 지금까지 WHO가 승인한 백신은 2021년 영국 제약사 글라소스미스클라인(GSK)이 개발한 모스퀴릭스(Mosquirix, RTS,S) 뿐이었다. 모스퀴릭스는 말라리아 예방 효과는 우수하지만, 대량 생산이 어려워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모스퀴릭스와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메트릭스 M 두 백신 모두 말라리아 열대열원충을 유발하는 기생충 항원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다. 다만 메트릭스M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저렴한 가격이 특징이다. 메트릭스M는 면역증강제를 사용해 모스퀴릭스와 비교해 훨씬 적은 용량의 백신을 투여해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세계 최대 백신 제조업체인 인도 혈청 연구소(Serum Institute of India)는 메트릭스M을 연간 1억 회분 이상 생산할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연간 최대 2억 회분까지 확장할 계획을 밝혔다. 메트릭스 M은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WHO에 따르면 메트릭스M의 1회분 가격은 2~4달러(약 2700~5400원)로 모스퀴릭스의 절반 정도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의료진이 영국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말라리아 백신 R21(매트릭스M)을 주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3일 WHO는 메트릭스M을 세계 두 번째 말라리아 백신으로 승인했다./영 옥스퍼드대

두 백신의 효과는 비슷할 것으로 WHO는 전망했다. 두 백신의 효과를 직접 비교한 임상시험은 없지만 WHO 정책 자문 그룹의 다이안 워스(Dyann Wirth) 박사는 “두 백신의 효과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케냐, 탄자니아 등 장마철 이후에 말라리아 감염이 많이 늘어나는 계절성 지역에서 메트릭스M을 항말라리아제와 함께 투여한 임상에서 75%의 말라리아 예방 효과를 확인했다.

말라리아는 얼룩날개모기(Anopheles)가 옮기는 기생충으로 전염되는 감염병이다. 모기가 사람 피를 빨 때 침과 함께 옮겨간 기생 원충이 심한 고열과 오한을 유발하다가 심하면 목숨까지 빼앗는다. 2021년 말라리아로 61만 9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말라리아는 몸속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바꿔서 면역 세포로부터 숨어있기 때문에, 말라리아에 한 번 걸렸다고 자연 면역이 생기지도 않고, 백신을 개발하기도 어렵다. 살충제를 뿌려도 내성이 생긴 모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게이츠 재단에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모기를 박멸시키는 ‘타깃 말라리아(Target malaria)’ 프로젝트까지 가동했을 정도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모기를 박멸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10여 년 전인 아시아에서 아시아 얼룩날개모기(Anopheles stephensi)라는 새로운 모기 종이 아프리카에 들어오면서 다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 모기는 에티오피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부티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이후 아프리카 동부인 수단, 소말리아를 거쳐 서부 나이지리아, 중동의 예멘까지 퍼졌다.

WHO는 메트릭스 M이 말라리아 백신의 수요와 공급 격차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 옥스퍼드대 제너 연구소 소장인 아드리안 힐 교수는 “이 백신은 연간 수십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GSK는 장내 세균으로 말라리아를 퇴치할 방법도 찾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존스 홉킨스대의 마르셀로 제이컵스-로레나(Marcelo Jacobs-Lorena) 교수와 GSK의 자네스 로드리게스(Janneth Rodrigues) 박사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기생충을 억제하는 박테리아인 ‘델프티아 츠루하텐시스(Delftia tsuruhatensis)’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GSK 스페인 연구센터 소장인 자네스 로드리게스 박사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실험하던 중 일부 모기가 말라리아 기생충에 잘 감염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해당 모기를 분석해보니 내장에 델프티아 츠루하텐시스가 많이 있었다. 연구진이 이 박테리아를 다른 모기에 주입했더니 역시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박테리아가 모기의 장에서 말라리아 기생 원충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는 말라리아 기생충의 알이 75% 적었다.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츠루하텐시스균(菌)이 실제로 말라리아 감염을 줄이는지 실험했다. 츠루하텐시스균이 있는 모기에 물린 쥐는 3분의 1만 말라리아에 감염됐지만, 일반 모기에 물리면 100% 감염됐다.

참고 자료

WHO, https://www.who.int/news/item/02-10-2023-who-recommends-r21-matrix-m-vaccine-for-malaria-prevention-in-updated-advice-on-immunization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f8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