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물질인 mRNA와 이를 이용한 코로나 백신. mRNA이 코로나 예방에 효과를 거두면서 다양한 전염병과 암치료용 mRNA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PAHO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백신 개발자들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 과거 백신은 바이러스 자체나 일부로 만들었다면 이번 백신은 바이러스의 정보에 해당하는 유전자로 만들어 백신 개발에 새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학자들은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반도체가 전자산업을 일으켰듯, 유전자 방식의 백신이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봇물을 연 것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는 2일 “2020년 초부터 시작한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는 효과적인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을 개발한 카탈린 카리코(Katalin Karikó·68)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Drew Weissman·64)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적군 직접 포로로 잡는 대신 정보전으로 대응

백신은 병원체를 미리 경험하고 인체의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약물이다. 이를테면 병원체라는 적군을 일부 포로로 데려와 어떤 힘을 가졌는지 파악해 미리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러면 나중에 대규모로 공격해와도 바로 대응할 수 있다. 코로나 19 대유행 이전까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신도 마찬가지로 바이러스 자체나 일부 단백질로 만들었다. 인체가 해당 바이러스를 약하게 경험하면 나중에 같은 바이러스가 침입할 때 바로 면역체계를 가동할 수 있었다.

mRNA 백신은 기존 백신과 다른 방식이다. 포로를 직접 잡는 대신, 포로에 대한 군사정보만 취하는 방식이다. 유전자는 DNA(인간)나 RNA(코로나바이러스)로 구성된다. 둘 다 생명체의 모든 현상을 좌우하고 몸을 만드는 단백질을 만든다. 말하자면 생명체라는 건물을 만드는 설계도이다. mRNA는 그중 일부를 복사해 원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mRNA는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상세 설계도인 셈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돌기 모양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호흡기 세포에 결합시킨 다음 안으로 침투한다.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 연합과 미국 모더나가 각각 개발한 백신은 이 스파이크를 만드는 설계도인 mRNA를 사람 세포에 전달한다. 세포는 mRNA 유전정보에 따라 스파이크를 합성하고 인체에서 이에 대항하는 면역반응이 유도돼 코로나를 예방한다. 인체 면역세포인 B세포는 바이러스를 둘러싸 세포감염을 막고, T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파괴한다.

코로나19 mRNA 백신을 개발한 카탈린 카리코(Katalin Karikó·오른쪽)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Drew Weissman·왼쪽)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 이들은 수년 전부터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미 펜실베이니아대

◇염기 변형해 인체 염증 막고 단백질 생산 늘려

mRNA 백신의 아이디어는 1990년대부터 나왔다. 카리코 부사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조교수로 있으면서 면역학자인 와이스먼 교수와 함께 mRNA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mRNA를 인체에 주입하면 단백질이 합성되기도 전에 수지상세포라는 면역세포가 외부 침입자라고 분해해버렸다. 잇따른 실패에 카리코 교수는 연구비가 끊기고 논문 게재가 거절되는 고충을 겪었다.

마침내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2000년대 중반에 mRNA를 이루는 염기 분자 하나를 다른 형태로 대체하면 면역세포가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RNA는 아데닌(A), 우라실(U), 구아닌(G), 시토신(C)이라는 네 가지 염기가 배열된 순서에 따라 유전정보가 달라진다. 두 사람은 이중 우라실을 변형시켜 염증 반응을 차단했다. 이 결과는 2005년 학계에 발표됐다.

이어 2008년과 2010년에는 염기를 수정한 mRNA가 자연 상태의 mRNA보다 단백질을 더 많이 생산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단백질 합성을 조절하는 효소의 활성을 감소시킨 덕분이었다. 말하자면 공장 기계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를 잠시 작동을 중단시켜 제품 생산량을 늘린 것이다.

카리코 교수와 와이스먼 교수는 mRNA의 염기 하나를 변형시켜 인체의 염증반응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원하는 단백질을 더 많이 만들도록 했다.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동시에 향상시킨 것이다. 이후 불안정한 mRNA를 지방입자로 감싸 보호하는 코팅 기술까지 개발되면서 백신이 완성됐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표면에 돋아있는 돌기인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체 세포에 결합시켜 안으로 침투한다. mRNA 코로나 백신은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를 만드는 설게도인 mRNA로 만든다./NIAID

◇다양한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응용

두 사람의 연구가 알려지면서 2010년부터 여러 회사가 mRNA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신생아의 두뇌 발달을 저해하는 지카 바이러스나,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신 개발이 시도됐다. 메르스나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도 코로나19를 유발한 바이러스와 같이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이다. 모두 표면에 스파이크 돌기들이 튀어나와 마치 왕관(corona)같다고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전 세계 과학자들은 앞다퉈 바이러스의 유전자 해독 정보를 인터넷에 올렸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 그리고 미국 모더나가 각각 mRNA 백신을 개발했다. 백신 개발은 짧게 5년에서 길게 10년까지 걸리지만, mRNA 코로나 백신은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개발이 진행돼 10개월만인 2020년 12월 허가를 받았다. 두 회사의 백신 모두 코로나19를 95% 예방했다.

mRNA 백신은 에이즈 예방에도 동원됐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워낙 심해 백신 개발이 힘들기로 유명해 수십년 도전에도 성공한 적이 없다. 모더나는 국제에이즈백신계획(iavi)과 비영리 연구기관인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와 함께 mRNA 방식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모더나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결합할 때 쓰는 단백질 중 돌연변이가 거의 없는 부분을 공략했다. 이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인 mRNA를 주입하면 면역세포인 B세포가 바이러스에 결합하는 항체를 만든다.

mRNA 백신은 기존 백신보다 전염병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독감 백신을 매년 새로 맞는 것도 새로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기존 백신은 세포나 달걀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해 몇 달씩 시간이 걸린다. 반면 mRNA는 화학합성으로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그만큼 돌연변이에 빨리 대응할 수 있다.

코로나뱌이러스의 인체 감염과 면역 반응. 화이자와 모더나의 mRNA 백신은 실제 바이러스 대신 돌기를 만드는 유전정보인 mRNA를 인체에 주입해 같은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자료=네이처/조선DB

◇암과 말라리아 예방에도 활용

mRNA 백신은 당초 암 치료용으로 개발됐다. 이번에 코로나 백신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 암 백신 개발도 활기를 띠고 있다. 사실 암 중에는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것들도 있어 백신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B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암을 일으키고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

최근에는 바이러스가 유발하지 않는 암도 백신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랐다. 이른바 면역 항암 백신이다. 암세포에만 있는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인체에 전달하면 암세포를 공격할 항체가 만들어진다. 바이오엔테크가 피부암인 흑색종에 대한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고, 독일 큐어백은 폐암을 공략하고 있다. mRNA 백신은 암환자 고유의 유전자를 전달해 맞춤형 치료까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영국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말라리아를 예방할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한 해 4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GSK 백신은 소량의 mRNA만 주입해도 몸 안에서 자가 증식하도록 했다. 바이오엔테크도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연합(EU)과 말라리아 백신 개발에 들어갔다. 모더나는 모든 독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범용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의 드루 와이즈먼 교수는 생식기 헤르페스(음부 포진)를 차단하는 mRNA 백신을 개발해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했다. 일리노이대의 저스틴 리히너 교수는 매년 4억명이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를 공략할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인체에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 4종을 동시에 차단하는 것이 목표다. 큐어백은 광견병 예방용 mRNA 백신도 개발하고 있다.

반도체 칩이 다양한 전자 기기를 탄생시켰듯, mRNA라는 원천 기술도 다양한 백신에 적용되고 있다. 이 점에서 mRNA 백신을 공학 혁신에 비유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남편 우구어 자힌과 바이오엔테크를 공동 설립한 외즐렘 튀레치 박사는 지난 2021년 네이처지에 “우리 회사의 과학자는 ‘면역 엔지니어’”라며 “mRNA 백신에서 엄청난 발전이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