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세계적 모델 킴 가다시안 같은 유명인들이 사용하면서 ‘부자들의 다이어트 약’으로 불리던 비만 치료 주사제 ‘위고비’가 제약·바이오 업계를 뒤흔드는 비만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는 1년 처방 비용만 약 2100만원이 들지만, 없어서 못 파는 약이 됐다. 그런데 최근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제2형 당뇨병치료제 ‘마운자로’ 역시 비만 치료계의 ‘게임 체인저’로 등장하면서 시장 판도를 또 한번 흔틀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약물은 기존에 출시된 비만치료제 ‘삭센다’ 보다도 체중 감소율보다 더 높은 것으로 임상을 통해 밝혀지면서다.
2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는 미 식품의약국(FDA)에 마운자로의 비만 적응증에 대한 허가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고, 올해 말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약은 지난해 10월 6일(현지 시각) FDA로부터 신속심사(패스트트랙) 의약품으로 지정을 받았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유망 의약품을 환자에게 더 빨리 제공하기 위한 제도다.
릴리의 마운자로는 지난해 5월 FDA에서 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조절 개선을 위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의 보조제로 허가를 받은 신약이다. 릴리에 따르면 마운자로에 대한 임상 3상에서 높은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가장 큰 경쟁사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는 이에 앞선 2021년 FDA로부터 성인용 비만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지만 정식 출시되지 않아 처방받을 수 없다. 같은 제약사에서 개발한 삭센다는 2014년 최초 성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비만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았다. 이 약물은 현재 국내외에서 허가받아 활발하게 처방되는 약이다.
이들 세 약물은 모두 GLP-1 유사체 기반의 비만치료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GLP-1은 소장의 L세포에서 식후에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이는 음식을 섭취하거나 혈당이 올라가면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체내에서 인슐린 분비를 유도해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GLP-1 호르몬의 유사체로 작용한다. 이런 기능으로 GLP-1 유사체는 당초 당뇨약으로 개발 중이었으나, 최근 비만 치료 분야에서도 효능이 뛰어나다는 것이 임상을 통해 입증돼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세 약물은 투약 편의성에서 차이가 있다. 삭센다는 매일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한다. 매일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컸지만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반면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일주일에 한 번만 맞는다. 두 약은 투약 횟수가 삭센다보다 적어 환자들에게 더 각광 받는다.
의료계와 비만 환자들이 주목하는 건 체중감소 효과다. 삭센다는 56주 투약 기준 9.2%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 위고비는 68주 동안 15.6% 체중 감소 효과, 마운자로는 72주 동안 체중을 22.5%까지 감소시켰다. 이들 세 약물의 12개월(1년) 후 투약 효과를 살펴보면, 마운자로와 위고비, 삭센다의 체중 감소율은 각각 22.5%, 17%, 9%인 것으로 나타났다. 마운자로가 위고비가, 삭센다보다 높은 체중 감소율을 보인 것이다.
마운자로는 아직 FDA에서도 비만 치료제로서 허가를 받지 못했다. 릴리는 내년 초 FDA 승인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의료계에선 마운자로가 당뇨를 가진 고도비만 환자들이 하는 ‘위장 절제 수술(비만대사수술)’에 준하는 수준의 체중 감량 효과가 높다고 보고 있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교수는 “비만형 당뇨 환자에서 새롭게 허가받은 마운자로와 같은 비만치료제가 위장 절제 수술에 준하는 수준까지 살을 뺄 수 있는 것이 임상을 통해 입증됐다”면서 “강력한 혈당 강하 능력, 체중 감소 효과를 보여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봤다.
위고비보다 후발주자로 진입한 마운자로를 개발한 릴리는 비만 치료제의 핵심인 ‘체중 감량 효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입증 실험에 나서고 있다. 릴리는 최근 미국국립보건원(NIH) 임상시험정보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즈에 마운자로에 대한 임상3b상을 시작한다고 알렸다.
‘SURMOUNT-5′라고 명명된 이 임상은 비만 환자나 건강 문제로 인해 과체중인 환자를 대상으로 위고비와 마운자로에 대한 비교 연구다. 이번 임상은 미국·캐나다, 남미와 유럽 61개 국가의 700명의 임상 참가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연구는 약 78주 동안 진행될 예정이며, 1차 임상 완료일은 2025년 2월이다.
최근에는 주사제를 넘어 알약으로도 개발 중이다. GLP-1은 세계 최초 먹는 GLP-1인 노보노디스크의 ‘리벨서스’가 지난해 국내에서 당뇨약으로 허가됐지만,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릴리, 화이자도 GLP-1 유사체 기전의 먹는 약으로 개발 중이다.
앞으로 당뇨와 비만분야를 중심으로 커지는 GLP-1 계열의 의약품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JP모건 보고서에 따르면 GLP-1 의약품 글로벌 시장이 오는 2032년 701억달러(약 94조원)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