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은 14일 “건보 재정 건전성을 감안할 때 내년 건강보험료가 1%는 인상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사무장 병원’이라고 불리는 불법·부당 의료기관을 신속 적발·단속하기 위해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 도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정 이사장은 이날 서울 중구에서 기자들과 만나 “건강보험료율을 동결한다면 건보재정 적자가 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 이사장은 “중장기 재정 계획을 감안해서 충격이 적은 방향으로 최소한도는 올리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7월 ‘2023 하반기 경제정책방향’를 발표하면서 내년 건보료율 인상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물가 안정과 생계비 부담 완화를 위한 인상 제한 품목에 건보료를 포함시킨 데 따른 것이다. 건보재정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흑자로 적립금이 사상 최대인 약 24조원에 이르면서, 정부가 내년도 건보료율은 동결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 이사장이 ‘건보보험료 동결 불가’ 의견을 밝힌 것은 내년 건보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 고갈 시기가 다가오는 데다 의료기관과 약국 등에 지급하는 요양급여비용이 내년에 1.98% 오른다. 건보에 따르면 내년 건보료율이 동결되면 5년 후 1개월 보름 분의 적립금 준비금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고, 1% 인상하면 그 해 수익금으로 7377억원 발생한다.

올해 직장가입자 월급에 부과되는 건보료율은 7.09%로 지난해보다 1.49% 올랐다. 인상률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2년 평균인 2.7%보다 낮지만, 요율은 2000년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직장조합 통합 이래 처음 7%대에 진입했다. 건보료율은 2017년 한 차례 동결된 걸 제외하면 최근 10년간 꾸준히 올랐다.

내년도 건보료율은 이달 중 예정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이를 반영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연말쯤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 건보료율이 확정된다.

정 이사장은 이어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과 같은 불법·부당 의료기관을 전문성을 갖고 신속히 잡아내 건보료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특사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무장병원 등은 의료법상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 의사나 법인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불법개설 의료기관을 말한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사무장병원으로 인한 누수액은 200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약 3조 430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공단이 회수한 금액은 2000억 원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특사경 설치를 담은 사법경찰직무법 개정 법안은 여야 의견 불일치로 국회 법사위에 멈춰 있다. 이 법안은 내년 5월 만료되는 21대 국회 임기 안에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정 이사장은 “사무장병원은 국민 건강보다는 영리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침해한다”며 “안해도 될 수술과 검사를 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특사경을 도입하면 불법 의료기관을 찾아내는데 걸리는기간이 현행 11.8개월에서 3개월로 대폭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신약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으려면 이후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 심의, 건보와 약가 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통과해야 한다. 심평원의 약평위에 건보는 의결권이 없다. 정 이사장은 “약평위에서부터 관련 부처가 모두 들어가서 논의하면 기간도 단축하고 약가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