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를 옮기는 아시아 얼룩날개모기(Anopheles stephensi). 피를 빨 때 모기의 침을 통해 말라리아 기생충이 사람 몸으로 들어간다./미 CDC

모기가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해충이라는 오명(汚名)을 벗을 길이 열렸다. 모기 몸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을 퇴치할 수 있는 장내 세균이 발견된 것이다. 모기에게 이 장내 세균을 퍼뜨리면 살충제나 백신 없이도 말라리아를 자연 퇴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의 마르셀로 제이콥스-로레나(Marcelo Jacobs-Lorena) 교수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자네스 로드리게스(Janneth Rodrigues) 박사 연구진은 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 기생충을 억제하는 박테리아인 ‘델프티아 츠루하텐시스(Delftia tsuruhatensis)’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동물실험서 말라리아 감염 3분의 1로 감소

얼룩날개모기(Anopheles)가 옮기는 말라리아는 전 세계적인 박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년 60만명 이상 죽음으로 내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말라리아로 61만9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모기가 사람 피를 빨 때 침과 함께 옮겨간 기생 원충이 심한 고열과 오한을 유발하다가 심하면 목숨까지 빼앗는다. 살충제를 뿌려도 이내 내성이 생긴 모기가 나오고, 백신은 아직까지 완벽한 면역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GSK 스페인 연구센터 소장인 자네스 로드리게스 박사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실험하던 중 일부 모기가 말라리아 기생충에 잘 감염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해당 모기를 분석해보니 내장에 델프티아 츠루하텐시스가 많이 있었다. 연구진이 이 박테리아를 다른 모기에 주입했더니 역시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았다.

GSK 연구진은 미국 존스 홉킨스대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원의 말라리아 연구자인 제이콥스-로레나 교수와 함께 박테리아가 말라리아 기생충을 차단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말라리아 기생충은 장에서 성장한 다음 모기의 침샘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모기가 사람 피를 빨면 침과 함께 사람 몸에 들어갈 수 있다.

연구진은 박테리아가 모기의 장에서 말라리아 기생 원충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는 말라리아 기생충의 알이 75% 적었다.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츠루하텐시스균(菌)이 실제로 말라리아 감염을 줄이는지 실험했다. 츠루하텐시스균이 있는 모기에 물린 쥐는 3분의 1만 말라리아에 감염됐지만, 일반 모기에 물리면 100% 감염됐다.

츠루하텐시스균은 아프리카와 인도에 사는 얼룩날개모기 모두에 효과가 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GSK 스페인 연구센터가 있는 곳의 지명을 따 말라리아 기생충을 막는 박테리아에 ‘트레스 칸토스1(Tres Cantos 1, TC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라리아 기생충을 억제하는 박테리아인 ‘델프티아 츠루하텐시스(Delftia tsuruhatensis)’의 현미경 사진./Science

◇설탕물 통해 모기에 장내 세균 전파

제이콥스-로레나 교수는 사이언스에 “델프티아 츠루하텐시스가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매력적인 도구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모기가 츠루하텐시스균을 조금만 먹어도 장에 군집이 생겨 지속적으로 말라리아 기생충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테리아는 모기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 독성이 강한 새로운 모기가 출현할 가능성도 낮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사람으로 치면 기생충을 막는 이로운 장내 세균인 셈이다.

존스 홉킨스대 연구진은 박테리아가 말라리아 기생충을 공격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박테리아는 하르만(harmane)이라는 분자를 분비해 기생충을 공격했다. 이 화합물은 일부 문화권에서 치료제로 쓰는 식물에서 발견된다. 하르만을 모기에게 먹이거나 곤충이 그 위를 걷기만 해도 기생충의 발육이 억제됐지만, 하루 정도 지나면 효과가 사라졌다. 장내 세균을 퍼뜨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대신 로드리게스 박사는 하르만 화합물을 모기장처럼 모기가 닿는 물질의 표면에 처리하면 말라리아 퇴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부리키나파소의 야외 연구시설에서 츠루하텐시스균을 모기에 퍼뜨릴 수 있는지 실험했다. 연구진은 가로세로 10m, 높이는 5m로 그물망을 치고 그 안에서 모기를 키웠다. 츠루하텐시균이 포람된 설탕물을 솜에 적셔 그물망 안에 뒀다. 하룻밤 사이에 모기 개체군의 4분의 3이 몸 안에 츠루하텐시스균의 군집이 생겼다. 이 모기가 말라리아 환자를 물어도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았다.

미 국립보건원(NIH) 말라리아 연구실 책임자인 캐롤리나 바릴라스-무리(Carolina Barillas-Mury) 박사는 사이언스에 “이번 발견은 기존 말라리아 예방법을 보완할 수 있다”며 “말라리아가 풍토병인 지역에 도움이 될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곤충 세포에 감염된 월바키아 박테리아(타원형 세포). 모기에 감염되면 뎅기열이 사람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위키미디어

◇뎅기열 퇴치에도 박테리아 활용

박테리아로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을 퇴치한 예는 또 있다. 지난 2020년 비영리기구인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은 인도네시아에서 월바키아(Wolbachia) 박테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퍼뜨려 뎅기열 환자 발생률을 77%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86% 감소했다. 연구결과는 이듬해 국제 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실렸다.

실험은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흰줄숲모기라고도 불리는 이 모기는 전 세계에서 매년 4억명이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를 비롯해 황열병 바이러스와 치쿤구니아열 바이러스, 신생아에서 두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를 옮긴다

박테리아를 가진 수컷이 야생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나중에 태어난 알이 부화되지 못한다. 결국 모기 씨를 말려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한 것이다. 또 월바키아 박테리아는 뎅기열 바이러스의 복제를 차단하므로, 박테리아에 감염된 암컷 모기에게 물려도 뎅기열에 걸리지 않는다.

영국의 바이오기업인 옥시텍(Oxitec)은 유전자를 변형한 모기로 월바키아균에 감염된 것과 같은 효과를 거뒀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국제 학술지 ‘첨단 생명공학과 기술’에 브라질에서 유전자 변형 모기를 방사해 뎅기 바이러스를 옮기는 암컷 개체수를 96%까지 줄였다고일 밝혔다.

옥시텍 연구진은 이집트숲모기 수컷에 암컷만 죽이는 유전자를 집어넣었다. 유전자 변형 모기가 야생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치명적 유전자가 나중에 태어난 암컷에게 전달된다. 해독제 역할을 하는 항생제가 없으면 이 암컷은 성충이 되기 전에 죽는다. 사람 피를 빨지 않는 수컷은 성충으로 자라 계속 암컷을 죽이는 유전자를 퍼뜨린다.

참고 자료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f8141

Frontiers in Bioengineering and Biotechnology(2022), DOI: https://doi.org/10.3389/fbioe.2022.975786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021), DOI: https://doi.org/10.1056/NEJMoa203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