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중입자 가속기에 대한 한국의 임상 데이터는 없어요. 일본만 데이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요.” (김태현 국립암센터 양성자 치료센터장)
“일본보다 가속기는 늦게 도입했지만, 기술 개발은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근거 기반 연구에서 앞서 나가겠습니다.” (이익재 연세의료원 중입자 치료센터장)
지난 2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암 치료의 새로운 기회-양성자치료와 중입자치료’를 주제로 열린 제78회 암정복포럼에서 중입자 치료기 효과를 두고 벌어진 토론의 한 부분이다. 올해 4월 서울 연세대의료원에 중입자 가속기가 도입된 이후 열린 이번 포럼은 각계의 관심을 받았다.
◇ ‘최신 입자 방사선’ 중입자 치료기 관심 ‘후끈’
방사선 치료는 크게 광자선과 입자선으로 나뉜다. 광자선은 엑스레이(X-ray)와 감마선, 입자선에는 양성자와 중입자가 있다. 입자선 치료는 입자가 가진 물리학적 성질인 ‘브래그 피크(Bragg Peak)’를 활용한다. 엑스레이와 감마선과 비교하면 에너지가 크고, 한 번에 에너지를 쏘아낼 수 있기 때문에 암세포 살상 효과가 크면서도 정상 조직에 발생하는 부작용이 적다.
중입자와 양성자는 무엇을 가속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양성자 치료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소립자인 양성자를 빠른 속도로 올려 암 치료에 활용하는 치료법이다. 양성자가 인체를 투과하면서 종양 부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쏘게 된다.
국내에 입자 방사선 치료가 도입된 것은 지난 2007년 국립 암센터가 처음이다. 이후 지난 2015년 삼성서울병원에서 1000억원을 들여 양성자치료센터를 설치했다. 삼성병원이 양성자 가속기를 들여올 때만 해도 ‘꿈의 치료기’라고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연세의료원이 2000억 원을 들여 중입자 치료기를 도입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중입자는 양성자 치료에 사용되는 수소 입자보다 12배 무거운 탄소 입자를 가속하기 때문에 세포 살상 능력이 더 뛰어나다. 양성자가 연간 24회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중입자는 2~3개월 집중 치료만 받게 된다.
치료 비용도 차이가 있다. 양성자 치료기는 지난 2015년 9월부터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시작했다. 대상은 18세 미만 뇌종양·두경부암에서 소아암 전체, 성인 뇌종양·췌장암·식도암 등이다. 환자 치료비는 건보 적용 전 1500만~2000만원에서 현재 200만~300만 원(연 25회 기준)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비급여인 중입자 치료는 한 번 치료에 5000만원 가량 든다.
◇ “암세포 타격 정확성 개선한 기술 개발”
이날 참석자들은 중입자 치료가 기존 치료법보다 낫다고 평가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희철 삼성서울병원 양성자 치료센터장은 “양성자와 중입자 치료의 동등성과 우월성에 편차가 있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암세포를 타격하는 조사 정확도를 개선하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학수 국립암센터 입자 방사선치료 연구사업단 기술연구팀장은 “정상조직은 놔두고, 암세포만 제거하려면 정확한 조준이 필수다”라며 “(중입자는) 얼마나 정확하게 치료할 것인지가 연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속에서 입자 치료를 실시한 연구를 보면 탄소는 물로 흡수되는 선량이 남아있었다”며 “인체에서도 이런 2차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데, 효과가 검증이 안 됐다”고 지적했다.
중입자 치료기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면 국내 임상 데이터를 더 충분히 축적해야 한다는 취지다. 양성자 치료기는 1990년 미국 로마린다 대학에서 처음 도입됐다. 중성자는 1994년 일본 국립방사선 과학회에서 처음 치료를 시작했다. 연세의료원은 한국에서는 첫 번째, 해외에서는 16번째로 중입자 치료기를 도입했다.
하지만 의료계 임상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을 동급으로 둔다는 것을 감안하면 ‘효과 대비 효율성, 데이터 추가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미국 독일 등 전 세계 7개국에서 중입자 가속기를 도입했고, 일본에 7개가 있다. 일본에서 중입자 치료를 받는 환자의 30%는 전립선암 환자로 알려졌다. 그다음은 뼈와 연골 등에 생기는 암인 골연부육종이다. 외부 골격을 이루는 근골격계와 신경 혈관 등에 생기는 악성 종양인데 수술로도 제거가 어렵다.
이날 토론의 분위기는 중입자 치료보다는 양성자 치료가 더 검증된 치료법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중입자 치료기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서울대병원은 부산 기장병원에 오는 2027년부터 중입자 치료를 시작할 계획이다. 제주대병원은 오는 2026년 도입 목표로 지난해 중입자 가속기 설비 도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중입자 치료기 도입을 예고했다.
이 센터장은 “중입자 가속기 도입은 일본보다 30년 뒤처졌지만, 기술 개발은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며 “일본에서 환자 코호트 연구를 위해 J크로스라는 중입자 치료 네트워크를 만들었듯이 한국도 K크로스 네트워크가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은 “기존 치료와의 효과 비교 및 병합 등의 임상 근거 기반 연구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고, 김한숙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수천억 원을 정부가 다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환자를 치료할 때 쓸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근거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은 우홍균 서울대학교 암진료부원장을 좌장으로 김태현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 삼성서울병원 박희철 센터장, 국립암센터 김학수 팀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