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과학자들이 3세대 유전자 편집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법 연구에 나서고 있다. 치매와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발병 위험을 키우는 유전자를 잘라내거나 편집해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6일(현지 시각) 미국의 제약바이오 전문 매체 피어스파마와 스탯(STAT)에 따르면 이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2023 알츠하이머협회 국제회의(AAIC)’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알츠하이머 치료법에 대한 연구 초록 두 편이 공개됐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특정 DNA를 찾아가 지퍼처럼 결합하는 가이드 RNA와, 결합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인 캐스9으로 구성된다. 유전자 가위가 잘라낸 부위는 정상 유전자로 대체돼 유전 질환의 근본을 치료할 방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뇌 속 아밀로이드베타(Aβ) 단백질이 뇌 신경세포에 쌓여 뭉치면 끈적한 플라크가 형성되는데, 이 플라크가 염증을 일으켜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도 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제거해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는 원리로 개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아밀로이드 전구체 단백질 유전자인 APP에 주목했다. APP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과잉 생산할 경우 플라크가 만들어지는데, 유전자 편집 기술로 APP를 절단하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브랜트 올스턴 연구원은 “APP 유전자는 알츠하이머병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며 “APP 유전자 편집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줄일 뿐 아니라 신경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연구진은 쥐 실험에서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해 알츠하이머를 앓는 쥐의 APP 유전자의 끝 부분을 잘라냈을 때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양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올스턴 연구원은 “우리는 크리스퍼 기술이 쥐들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치료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향후 우리 인체 임상시험을 통해 APP 크리스퍼 기술을 테스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유전자를 잘라낼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또 다른 연구는 치매의 강력한 유발 인자로 알려진 변이유전자인 ‘APOE-E4′에 초점을 맞췄다. APOE는 몸속 지질과 콜레스테롤 운반체로, E2, E3, E4 세 가지 유전형이 있다. 이 중 E4를 가진 사람에게서 치매 발병 위험이 3~12배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E4 유전자를 2개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위험이 8~12배 높다.
미국 듀크대 연구팀은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해 이 APOE-E4를 줄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임상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간 유도만능줄기세포(human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hiPSC)로 만든 뇌 오가노이드와 인간화된 마우스 모델로 실험한 결과 APOE-E4 수준이 크게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알츠하이머협회 최고과학책임자(CSO)인 마리아 카리요 박사는 “크리스퍼와 같은 혁신적인 새로운 아이디어가 알츠하이머병 치료법으로 환영받고 있다”며 “FDA가 승인한 항아밀로이드베타 항체 약물은 치매 치료의 첫 단계로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치료·예방을 위해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한 연구들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