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염색체인 X염색체(왼쪽)와 Y염색체(오른쪽). 여성은 XX, 남성은 XY염색체를 갖고 있다. 노화로 남성의 백혈구에서 Y염색체가 줄어들면 심장병과 퇴행성 신경질환,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NATHAN DEVERY/SCIENCE SOURCE

남성이 여성보다 암에 약한 이유가 남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에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동시에 나왔다. 그동안 남성이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술과 담배를 더 많이 해 암에 잘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유전자가 암의 성별 차이를 좌우하는 원인으로 밝혀진 것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2일 대장암과 방광암이 남성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이유가 Y염색체에 있음을 밝힌 연구 논문 2편을 발표했다. 한 논문은 남성 방광암 환자의 Y염색체가 줄어들면 암세포가 면역체계를 잘 피해 더 위험해진다고 밝혔다. 다른 논문은 생쥐 실험으로 Y염색체에 있는 특정 유전자가 대장암이 몸 전체로 퍼지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호주 시드니 조지 글로벌 보건연구소의 수 하우프트(Sue Haupt) 박사는 이날 네이처에 “(암의 남녀 차이가) 생활 양식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며 “유전적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남성 암환자를 치료할 때 Y염색체를 공략하면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Y염색체 줄면 방광암 악화, 면역체계 잘 피해

염색체는 유전 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 가닥들이 실패 역할을 하는 단백질에 감겨 있는 형태이다. 인간은 23가지 염색체 쌍을 갖고 있다. 일반 염색체 22가지와 성염색체 한 가지이다. 성염색체는 여성은 XX 염색체, 남성은 XY염색체를 갖고 있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Y염색체가 줄어든다. 70세 남성의 약 40%, 93세의 57%가 일부 백혈구에서 Y염색체가 없어진다. Y염색체가 줄면 심장질환과 퇴행성 신경질환, 암에 걸리기 쉽다. 미국 버지니아 의대 연구진은 지난해 ‘사이언스’에 “나이가 들면서 면역세포에서 Y염색체가 사라지면 심장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30% 이상 높아진다”고 밝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더스-시나이 병원의 댄 테오도르스쿠(Dan Theodorescu) 박사 연구진은 이번에 근육층에 암이 침투해 방광을 제거한 남성 환자를 조사했다. 암세포를 생쥐에 이식했더니 Y염색체가 감소한 쪽이 더 위험했다. 이 경우 주변의 면역세포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특히 Y염색체가 줄어든 상태에서 면역관문억제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상태가 더 나빠졌다.

인체가 병원체에 감염되면 면역체계가 작동한다. 하지만 면역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면 오히려 정상 조직까지 손상될 수 있다. 인체는 이를 막기 위해 정상 세포에 면역관문이란 단백질을 붙여 면역세포의 자해 행위를 막는다. 암세포는 면역관문 단백질로 자신을 위장해 면역세포를 피하는데, 이를 막는 것이 항체치료제인 면역관문억제제이다.

Y염색체 감소는 면역관문억제제로 대응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을 통해 세포가 Y염색체를 잃으면 면역세포인 T세포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암세포와 싸울 T세포가 없으면 암세포는 마음대로 자랄 수 있다. 이 경우 면역력을 회복시키는 면역관문억제제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연구진은 “Y염색체가 감소한 암세포도 면역관문억제제에 더 민감하다는 아킬레스건이 있다”고 밝혔다.

Y염색체가 소실된 암세포(왼쪽)가 정상세포처럼 위장해 면역세포(파란색)의 공격을 받지 않는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면역관문억제제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식별하는 것을 도와 암을 억제할 수 있다./미 시더스-시나이병원

◇대장암 전이 돕는 유전자도 Y염색체에 있어

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의 로널드 드피뇨(Ronald DePinho) 박사 연구진은 이날 네이처에 “생쥐실험에서 KDM5D라는 Y염색체 유전자가 암세포간 연결을 약화시켜 암이 다른 조직으로 퍼지는 것을 돕는다”고 밝혔다. 반대로 해당 유전자가 제거되면 암세포의 전이가 줄고 동시에 면역세포에 포착될 가능성도 커진다는 연구진은 설명했다.

대장암은 선진국에서 폐암에 이어 사망자가 두 번째로 많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발병률이 높고 더 위험하다. 지금까지 대장암의 남녀 차이는 주로 생활 습관이나 성호르몬에 기인한다고 알려졌다. 이번에 남녀 차이를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한 것이다.

KDM5D 유전자가 과도하게 작동하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식별하는 것을 방해한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가 면역세포인 T세포가 비정상 세포를 제거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데 도움을 주는 TAP1, TAP2 유전자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Y염색체는 남성이 어떤 암에 걸렸는지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방광암에서는 Y염색체가 있어야 면역세포가 작동하는 반면, 대장암에서는 Y염색체에 있는 유전자가 면역세포를 억제했다. 테오도르스쿠 박사는 “모든 암이 동일한 생물학적 형태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며 “앞으로 Y 염색체 손실이 다양한 장기와 암 유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234-x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254-7

Science(2022),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n3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