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분. 19일 기준 대한적십자가 보유한 혈액 보유량이다. 적정혈액보유량은 하루 평균 5일분 이상이다. 혈액 수급 위기 단계로 치면 ‘관심’ 단계다. 최악의 상황은 면하고 있지만, 저출산과 고령화로 헌혈 인구가 줄면서 헌혈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 각국이 혈액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혈액 개발에 뛰어들었다. 영국은 이미 인공혈액 임상시험에 돌입했고, 일본 역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도 올해부터 정부 차원에서 인공혈액 생산기술 개발과 제조, 임상 연구를 위한 사업을 본격화한다. 2030년대 인공혈액을 내놓기 위한 첫걸음이다.
세포기반인공혈액기술개발사업단은 지난 10일 “다음달 9일까지 ‘2023년도 제1차 세포기반인공혈액(적혈구와 혈소판) 제조, 실증 플랫폼 기술개발 사업 신규 과제’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인공혈액 개발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질병관리청이 참여하는 다부처 공동 사업으로, 오는 2037년까지 5년씩 나눠 3단계로 추진된다. 2027년까지 1단계는 연구개발(R&D), 2단계 5년은 임상시험, 마지막 3단계는 실용화 사업으로 진행된다. 1단계 총지원 규모는 471억원이다.
사업단 관계자는 “정부 지원 규모가 예상보다 커서 이른 시일 내 공고 신청을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국내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기업과 학계 대부분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단장은 김현옥 전 연세대 의대 교수가 맡았다. 김 단장은 2015년 효소 복합체인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처음으로 RhD+ 혈액형을 RhD- 형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RhD- O형 혈액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RhD+ O형은 물론, A형, B형, AB형 모든 사람에게 수혈할 수 있다.
혈액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세포 성분인 혈구와 액체 성분인 혈장으로 구성된다. 인공혈액개발사업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모두 인체 세포를 기반으로 한다. 이 점에서 정부로부터 세포 처리시설 허가를 받은 40여 기관들이 이번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세포 처리시설은 인체세포, 줄기세포, 혈액과 같은 인공혈액 원료를 채취하고, 검사해 보관하는 역할을 맡는다. 인공혈액 제조와 생산, 개발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기업으로는 대웅제약(069620), 차바이오랩, 시지바이오, 입셀이 대표적이며 학계에는 서울대병원,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연세의료원이 있다.
해외는 이미 인공혈액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진입했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줄기세포를 활용해 실험실에서 배양한 인공혈액을 환자에 투여하며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교토대에서 창업한 메가카리온(MegaKaryon)은 2021년 유도만능줄기(iPS)세포로 혈소판을 만든 뒤 환자에 투여해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iPS세포는 다 자란 피부세포를 배아(수정란) 상태로 되돌린 것이다. 태아로 자랄 배아 대신 성인의 피부세포를 활용해 생명윤리 문제도 피할 수 있다.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는 2012년 iPS세포를 최초로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번 사업으로 국내에서도 유도만능줄기(iPS)세포 연구가 활성화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