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현 삼진제약 대표이사 사장이 2026년 5월 18일 아리바이오의 AR1001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글로벌 기술 수출 간담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허지윤 기자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 신약 AR1001을 개발 중인 아리바이오가 중국 푸싱제약과 최대 7조원 규모 글로벌 판권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삼진제약(005500)으로 쏠리고 있다.

삼진제약이 AR1001의 국내 생산·판매 권한과 아리바이오 지분을 보유한 전략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현재 삼진제약은 아리바이오 지분 약 5.9%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아리바이오도 삼진제약 지분 8.34%를 보유하고 있어 양사는 전략적 동맹 구조다.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열린 아리바이오의 AR1001 기술 수출(글로벌 판권 계약) 기자 간담회장에는 삼진제약의 영업·마케팅과 연구개발(R&D) 부문을 총괄하는 오너 2세 최지현 대표이사·사장이 참석했다.

최 사장은 이날 "5년 전 AR1001 임상 2상이 마무리되던 봄부터 지금까지 아리바이오와 함께한 여정은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삼진제약의 경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2022년 삼진제약이 아리바이오와 약 300억원 규모 상호 지분 투자를 단행하며 '제약-바이오 기술경영 동맹 협약'을 맺을 당시,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와 손을 맞잡은 인물은 전문경영인인 최용주 당시 삼진제약 대표였다. 최용주 전 대표는 2019년 3월 선임된 이후 단독대표 체제로 회사를 이끌다가 작년 퇴임했다.

2022년 8월 30일 최용주(왼쪽) 삼진제약 대표이사와 정재준 아리바이오 대표이사가 양사 간 '제약-바이오 기술경영 동맹' 협약을 체결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삼진제약

동시에 삼진제약의 2세 경영 체제가 막을 열었다. 삼진제약은 조의환·최승주 두 공동 창업자 가문이 50년 넘게 이어온 '한 지붕 두 가족' 공동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작년 조 회장의 장남 조규석 사장(경영관리·재무·생산 총괄)과 최 회장의 장녀 최지현 사장이 각자대표로 선임됐다.

삼진제약은 아리바이오와 계약을 통해 AR1001의 국내 임상 3상 공동 진행과 국내 독점 생산·판매 권한까지 확보했다. 투자 초기만 해도 중견 제약사의 이례적인 바이오벤처 투자 정도로 보는 시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향후 사업 권리 구조를 선점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번 7조원 규모 글로벌 딜을 계기로 삼진제약이 국내 생산권 확보를 넘어 향후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까지 맡을 가능성도 주목된다.

정재준 아리바이오 공동대표는 "푸싱제약과 협의 과정에서 삼진제약이 가진 생산권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면서 "삼진제약이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세컨드 서플라이어(차순위 공급처) 또는 원료의약품(API) 글로벌 공급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AR1001 상용화 성공시 삼진제약이 글로벌 생산·공급 체계 일부를 담당할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이날 성수현 아리바이오 공동대표는 이번 계약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성 대표는 "푸싱그룹에서 아리바이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싶어 했으나 우리의 패밀리 기업인 삼진제약이 원하지 않는다고 막았다"고 했다.

그는 "중국 그룹이 아리바이오의 2대 주주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푸싱의 투자는 삼진제약(2대 주주) 이후 수준으로만 받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거대 국외 자본의 투자 제안에도 기존 파트너십(동반 관계)과 지배구조 안정성을 우선시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5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아리바이오와 푸싱제약이 글로벌 판권 계약을 기념하고 있다. (사진 왼쪽 두번째부터) 궈광창(郭廣昌) 푸싱그룹 회장, 첸위칭(陳玉卿) 푸싱그룹 회장, 정재준 아리바이오 공동대표이사, 성수현 아리바이오 공동대표이사, 이병건 아리바이오 특별고문

아리바이오 기술 수출 소식이 전해진 지난 14일 이후 삼진제약 주가는 치솟으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13일 종가가 1만7900원이었던 삼진제약 주가는 19일 2만4900원을 기록하며 5거래일간 39%가량 올랐다.

증권 투자자들이 AR1001 임상 성공 시 삼진제약이 누릴 생산·판매 수혜와 지분 가치 상승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지현 사장으로선 삼진제약의 2세 경영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구나 국내 제약업계 전반이 정부의 약가 제도 개편을 앞두고 수익성 방어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진통제 '게보린'으로 대표되는 전통 제약사 이미지가 강한 삼진제약도 제네릭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연구개발(R&D) 강화로 체질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의 중견기업 육성 사업인 '월드클래스 플러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4년간 총 40억원 규모의 R&D 지원금을 받는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대대적인 제네릭(복제약) 가격 인하가 예고되면서 중견 제약사들의 성장 전략 고민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삼진제약이 체질 변화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9~10월 발표가 예상되는 AR1001 글로벌 임상 3상 핵심 지표(톱라인) 결과에 따라 아리바이오와 최대 주주 소룩스(290690), 2대 주주 삼진제약, 글로벌 파트너 푸싱제약의 희비가 결정될 전망이다.

최지현 사장은 간담회에서 "알츠하이머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AR1001의 제조와 판매를 책임지는 회사로서 환자들이 안정적으로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치료제 공급과 생산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아리바이오는 직접 상장 가능성에 대해 "소룩스와의 합병 추진 기조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합병 구조 변경 등이 결정된 바가 전혀 없으며 관련 절차도 기존 계획에 따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