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지피티

"인건·원료·물류비는 계속 오르는데 약값은 내리니 기업은 부담이 크죠." "이번 정책만으로 혁신 신약 개발이 촉진될지는 불확실합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6일 제네릭(복제약) 약가(藥價)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인하하는 내용의 약가제도 개편안을 확정하면서 국내 제약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번 제네릭 산정률 조정으로 하반기부터 약가는 약 10~15% 수준 인하 효과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고혈압약 노바스크정의 현재 약가는 367원인데 이번 조정으로 318원으로 내린다. 연간 약품비는 13만3955원에서 11만6070원이 되는 식이다. 이 중 30%만 환자가 부담하는 구조다. 아직 세부 인하 대상 품목은 공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 급여 재정과 환자의 비용 부담은 기존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약가 산정률에 칼을 댄 이유는 신약 개발보다는 제네릭 판매에 의존하는 영세 제약사가 난립하는 문제를 개선하고, 약품비 증가 속도를 관리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다.

그러나 현장에서 기업들이 체감하는 분위기는 다르다. 대부분 기업이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제네릭 비중과 품목 특성이 달라 충격 강도는 다르나, 복제 의약품이 대부분 제약사 수익의 한 축인 만큼 '빨간불'이 켜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 "허리띠 졸라매야…고용 산업 재편"

제네릭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 제약사들은 '생존 직격탄'이란 목소리까지 나온다.

당장 수익성 악화 방어책으로 인건비 인상 폭과 판매·관리비(판관비) 조정과 고용 축소를 고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신규 고용 문을 좁히는 식의 대응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A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인하는 매출보다는 이익 감소 폭을 키운다"며 "비용 구조상 결국 인건비까지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의약·화장품분과(화학노련) 등 노조도 추가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가 기대한 효과와 달리 혁신 신약 개발 유도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매출 상위권 B제약사 임원은 "정부가 처음 제시했던 초기 안보다는 완화된 것이라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준 것으로 평가된다"면서도 "다만, 이번 개편안만으로 신약 개발을 촉진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내외적으로 제약산업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투자 위축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업들이 오히려 미용 관련 의약품과 의료기기, 건강기능식품 등 비급여 시장을 수익성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매출 상위권 C제약사 관계자는 "오히려 수익성이 높은 비급여 시장으로의 이동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약 개발은 성공이 보장되지 않고 기간도 길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며 "연구개발(R&D) 확대가 어렵고 생존 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비급여 시장인 미용·헬스케어 사업을 대안으로 삼을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약국. /조선비즈

◇ "비급여 이동·처방 확대…제약사 대응 엇갈려"

그런가 하면, 동일 성분 의약품 간 경쟁이 치열한 시장 구조상, 상위권 기업들이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가격 인하로 인지도가 높은 기업의 약이 더 많이 선택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다.

이런 의견을 낸 한 관계자는 "쉽게 말하면, 가격이 둘 다 비슷하면 보통 인지도 높은 회사의 약 처방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며 "약가 인하에 따른 가격 경쟁력을 의료진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일부 품목은 지금보다 처방이 늘어날 여지도 있기 때문에 영업 전략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다국적) 제약사들 사이에선 정부의 약가 제도 개선에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다.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국내사와 달리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 중심의 사업 구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 빅파마 한국법인들은 신약 가치를 더욱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국내 약가 제도 개선이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드러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혁신 신약 가치 반영과 환자 접근성 개선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KRPIA는 "희귀·중증질환 치료제 신속 등재, 약가 유연 계약제 도입, 경제성평가(ICER) 기준 개선 등이 추진될 경우 약가 제도가 보다 환자 중심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면서 "한국의 신약 급여율이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인 만큼, 제도 운영 과정에서 합리적 약가 기준 마련과 민관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