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생산시설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약가 인하와 규제 변화로 수익성 변동성이 커지자, 주력 품목과 차세대 파이프라인을 뒷받침할 설비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임상과 기술이전으로 기술력을 입증한 뒤에는 결국 공급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글로벌 수주에 대비해 생산 역량을 미리 키우는 분위기다.

동아쏘시오홀딩스, 종근당, 보령 사옥./각 사

5일 업계에 따르면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 종근당(185750), 보령(003850) 등 주요 제약사들이 생산시설 확충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바이오의약품과 항체-약물접합체(ADC), 국가필수의약품 등 각 사의 전략 품목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 투자다. 단기 실적 방어를 넘어 중장기 공급 역량을 확보하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아쏘시오그룹의 바이오의약품 계열사 에스티젠바이오는 최근 제1공장 증설에 1100억원을 투입했다. 에스티젠바이오는 동아에스티(170900)가 개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이뮬도사'의 글로벌 생산기지다. 이뮬도사는 글로벌 상업화에 힘입어 지난해 103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회사는 원료의약품(DS)과 완제의약품(DP) 생산설비를 증설해 2028년 1분기까지 연간 생산 규모를 기존 9000리터(ℓ)에서 1만4000ℓ로 확대할 계획이다.

동아쏘시오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 에스티팜(237690)은 지난해 경기도 안산 반월캠퍼스에 '제2올리고동'을 준공하고 글로벌 수주 확대에 나섰다. 에스티팜은 리보핵산(RNA) 의약품의 핵심 원료인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CDMO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번 증설로 생산 규모를 기존 대비 2배 이상인 14mol(2.3~7t)까지 늘렸다.

종근당 자회사인 경보제약(214390)은 항체약물접합체(ADC) CDMO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인 960억원을 투자해 충남 아산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27년 말부터 임상 1·2·3상 시료와 ADC 완제품을 생산해 전임상부터 상업화까지 아우르는 공급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보령(003850)은 안산캠퍼스 내 필수의약품 생산시설 증설에 300억원을 투입한다. 이곳은 경구용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생산하는 거점으로, 해당 품목은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보령은 현재 국내 수탁 공급 물량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 투자로 생산시설을 기존 연면적 840평(약 2800㎡)에서 1320평(약 4400㎡)으로 50% 이상 확대하고, 연간 생산능력(CAPA)도 2배 이상 늘릴 방침이다.

'월 1회 투여' 비만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장기지속형 주사제 기업들도 설비 확충에 나섰다. 글로벌 기업과의 공동연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임상 성공 직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체계를 갖추는 것이 경쟁력을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GLP-1 계열 치료제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기술력뿐 아니라 생산능력 확보가 중요한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펩트론(087010)은 지난해 12월 충북 오송바이오파크 내 유휴 부지 5000평에 신공장 건축 허가를 승인받고 착공을 준비 중이다. 총 투자 규모는 890억원이다. 신공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우수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cGMP)에 맞춰 설계되며, 펩타이드 약물의 투여 주기를 1~6개월로 연장하는 스마트데포(SmartDepot) 플랫폼이 적용된 1개월 지속형 전립선암 치료제와 당뇨·비만·파킨슨병 치료제 등 주요 파이프라인의 상업 생산을 담당한다.

지투지바이오(456160)는 이달 1500억원을 조달하며 제2 GMP 공장 건설을 본격화했다. 이 중 600억원은 충북 오송에 들어설 상업 생산시설에 투입된다. 현재 오송 바이오클러스터 내 장기지속형 미립구 주사제 전문 1공장을 건설 중이며, 제2 GMP 공장은 연내 착공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벤티지랩(389470)은 지난해 2월 CDMO 기업 큐라티스(348080)를 인수해 오송 바이오플랜트 내 장기지속형 주사제 전용 GMP 설비를 확보했다. 자사 약물전달 플랫폼 'IVL-드럭플루이딕(DrugFluidic)'을 적용해 임상 시료 생산부터 상업화 단계까지 동일 제조소에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파트너를 선정할 때 기술력뿐 아니라 상업 생산 가능 시점과 실제 공급 물량을 가장 먼저 따진다"며 "임상 성공 이후 곧바로 대량 생산에 돌입할 수 있는 설비능력을 갖춘 기업이 결국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