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제약 베트남 공장 전경. /삼일제약

삼일제약(000520)은 올해 하반기 베트남 점안제 공장 가동이 목표다. 7500평 부지에서 연간 점안제 3억300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다.

삼일제약은 이를 위해 GMP(의약품 제조·품질 관리 기준) 승인 등을 준비하면서 지난해 연결 기준 22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베트남 공장 가동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일제약 관계자는 "베트남은 경제가 성장하며 의약품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면서 "인건비가 저렴한 현지 생산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 기업의 신흥국 공략이 잇따르고 있다. 인구가 많고 의료 수요가 높은 베트남, 브라질, 인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소비 여력이 성장했지만 의료와 헬스케어는 그에 맞게 발전하지 않아 신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약값 인하 등으로 위축된 내수 시장을 벗어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러스 치료제 임상하고 헬스케어 센터 설립

베트남은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 기업 사이에서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코로나19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고령 인구가 늘면서 의약품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베트남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3년 7조원에서 2029년 9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기업의 접근 방식은 제각각이다. 그동안 경험하기 어려웠던 차별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아예 현지 사정에 맞춘 치료제를 개발한다.

GC(녹십자(006280)홀딩스)는 베트남 하노이에 인공지능(AI) 기반 건강 검진 센터를 열었다. 2시간 안에 주요 암 14종과 생활 습관 질환 30여 종을 분석할 수 있다. 베트남 페니카 그룹과 합작 투자로 설립한 헬스케어 센터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베트남에서 바이러스 억제에 효과가 있는 후보 물질 제프티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은 매년 40만명 넘는 뎅기열 환자가 나오는데 제프티는 뎅기열 치료 등을 목표로 한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임상 결과에 문제가 없을 경우 허가를 거쳐 치료제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베트남 제약사 베파코와 의약품 유통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휴온스메디텍이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위치한 바수그룹 생산 라인에서 현지 조립 생산라인 준공식을 진행했다. 사진은 바수그룹 아비나이 베즈감 대표(왼쪽), 휴온스그룹 윤성태 회장(오른쪽). /휴온스그룹

◇브라질서 바이오시밀러 선보이고… 인도서 의료기기 부품 조립

중남미 최대 의약품 시장인 브라질도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다. 브라질의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4년 41조원에서 2028년 55조원으로 전망된다. 현지에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에 대한 수요가 높고 브라질 정부도 바이오시밀러 허가 절차 과정을 간소화하고 있다.

셀트리온(068270)은 두드러기 치료제 옴리클로,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 등을 브라질에서 선보였다.

원료 단계부터 의약품 시장에 파고드는 전략도 가능하다. 브라질은 원료 의약품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HK이노엔(195940)은 충북 음성군에 위치한 공장이 지난해 연말 GMP 인증을 브라질에서 획득했다고 밝혔다. 3세대 위장약 케이캡 원료인 테고프라잔 공급이 가능하다. 코오롱생명과학(102940) 충주 공장도 브라질에서 고지혈증 치료제 원료 의약품에 대한 GMP 인증을 받았다.

인도는 지역마다 의료 격차가 크고 정부가 자국 생산 제품에 관세 감면과 공공 입찰 우대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휴온스(243070)그룹 의료기기 계열사 휴온스메디텍이 인도에서 내시경 소독기를 생산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휴온스그룹은 인도 바수그룹과 계약을 맺고 현지에서 부품을 조립한다. 윤성태 휴온스그룹 회장은 최근 인도에서 열린 조립 생산 라인 준공식에 참석할 정도로 관심을 갖고 있다. 휴온스그룹 관계자는 "현지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만큼 납기 단축, 신속한 AS, 유연한 재고 관리 등의 장점이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미국·유럽 넘어 다변화"…약가 인하 대응, 수익 구조 재편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 기업은 과거 미국과 유럽 등 진출에 주력했다. 최근에는 전략이 달라져 신흥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미국, 유럽 뿐만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했다.

신흥국의 의약품 정책도 우호적이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식약처에서 수행한 의약품, 바이오의약품, API 실사나 GMP 인증 등이 브라질에서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다.

이 부회장은 "의약품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다른 공산품보다 수입 기준이 엄격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정부 차원의 품질 관리와 민관 협력으로 K의약품에 대한 신뢰가 구축된 상황"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복제약(제네릭) 약가 인하가 예고된 만큼 기업들이 신흥국 진출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약가 인하에 대응해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국내에서 값을 인정받기 어렵다면 신흥국 등 해외 비중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