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세계 시가총액 1위 제약사 미국 일라이 릴리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 생산 거점을 한국에 구축한다.

SK(034730)는 원료의약품을 생산하고, 완제품 제조는 별도 파트너사에 맡기는 위탁개발생산(CDMO) 체제다. 국내에서 GLP-1 비만약이 생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릴리는 의약품 중간체–원료의약품(API)–완제품을 하나로 잇는 일괄 생산 체제를 충북 지역에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가 마운자로의 원료의약품(API)인 펩타이드를 생산해 완제품 제조사로 보내는 구조다. 릴리는 이러한 계획을 연내 공식 발표할 전망이다.

◇SK 세종 5·6공장, 韓 첫 비만약 생산 기지

SK팜테코는 자회사 SK바이오텍을 통해 세종 명학산업단지에 대규모 펩타이드 원료 생산 공장인 5·6공장(M5·6)을 짓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5공장 계획에는 약 3400억원이 투입된 지하 1층~지상 5층, 연면적 1만2600㎡ 규모였다. 실제로는 바로 옆 6공장도 동시에 착공해, 두 공장을 합친 전체 연면적은 2만6410㎡로 당초 계획의 두 배에 달한다.

하나로 이어진 두 공장은 원료 제조동, 생산 공정 인프라를 갖춘 유틸리티동, 그외 품질관리(QC)·미국 우수의약품 제조관리 기준(cGMP) 시험생산시설이 포함돼 있다.

내년 6월 준공 후 연말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가동 즉시 연간 수십 톤 규모의 펩타이드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SK는 향후 수주 확대에 대비해 4공장(M4)에서도 릴리 납품용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

세종 명학산업단지의 SK바이오텍 M5(왼)·M6(오) 신축 공장 건설 현장. 두 건물은 연결돼 있다./염현아 기자

SK, 충북도 등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릴리 본사 직원 3~4명이 이 공장에 2주 가까이 상주하며 설비 실사(audit)를 진행했다.

SK팜테코 측은 이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고 했지만, 복수 관계자들은 "공장 설계 단계부터 릴리와 파트너십이 논의됐으며, 현재 CDMO 계약이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SK팜테코는 2015년 SK바이오팜(326030)의 원료의약품 사업을 분할해 설립됐으며, 이후 미국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BMS) 아일랜드 공장(현 SK바이오텍 아일랜드), 미국 CDMO 기업 앰펙, 프랑스 세포유전자치료제(CGT) CDMO 이포스케시와 세계 1위 CGT CDMO 미국 CBM 등 글로벌 CDMO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글로벌 바이오 CDMO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한국·미국·유럽 등 총 5곳의 생산기지를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 운영하고 있다.

세종 명학산업단지의 SK바이오텍 M5·M6 신축 공장 건설 현장 후문./염현아 기자

◇완제품은 누가?…'장기지속형 기술' 펩트론 유력 검토

CDMO 체제에서는 SK가 원료를 생산한 뒤 완제품 생산 단계가 남는다. 의약품 생산은 원료(중간체 포함)와 완제품으로 구성된다. 현재 완제품 단계에서는 장기지속형 펩타이드 주사제 기술을 보유한 펩트론(087010)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펩트론은 청주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내 유휴부지에 지상 3층, 연면적 8000㎡ 규모의 cGMP 신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완공 시 연간 최대 1000만 바이알(병)의 지속성 주사제를 생산할 수 있다. 충북경제자유구역청은 현재 건축 인허가 심의를 진행 중이며, 이르면 내달 초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장기지속형 제형은 약물을 서서히 방출해 약효가 최대 수개월 유지돼 투약 횟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릴리는 펩트론이 보유한 장기지속 플랫폼 '스마트데포(SmartDepot)'의 기술 평가를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펩트론과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다음 달 7일 연구를 마친 뒤 본계약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펩트론은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릴리와의 기술성 평가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상업화 단계에서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이라며 공식 입장을 유지했다.

릴리가 SK에 이어 펩트론을 고려하는 배경에는 기술력뿐 아니라 두 공장의 위치가 세종·오송으로 서로 인접해 있어, 냉장 보관이 필요한 펩타이드 운송이 용이하다는 점이 크다. 원료 생산에 필요한 중간체 제조 업체로는 SK바이오텍 고객사가 검토되고 있다.

펩트론 신공장 조감도

◇릴리, 왜 한국 택했나?…약가 인하·생물보안법 영향

전 세계적으로 GLP-1 기반 비만약 수요가 급증하자, 릴리는 지난해 미국, 아일랜드, 중국 공장을 잇달아 증설하고 최근에는 외부 CDMO 확보에도 집중하고 있다. 한국을 차세대 생산 거점으로 선택한 배경에는 안정적인 공급망과 생산 단가 경쟁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초 노보 노디스크와 릴리와 미국 내 비만약 가격을 70~80% 낮추는 협정을 발표했다. 내년 1월 적용 예정인 약가 인하로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원가 절감과 단가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졌고, 한국 생산이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비만약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용량에 따라 월 20만원대 후반에서 70만원대에 판매된다. 한국 노보와 릴리도 국내 가격 정책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릴리가 세종·오송을 글로벌 생산벨트에 편입하면 국내 원료·완제 생산 생태계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고, 국산 마운자로라면 단가를 지금보다 크게 낮출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통과시킨 생물보안법 영향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우시앱텍에 GLP-1 원료 CDMO를 맡겨온 릴리는 법안 추진이 본격화하자, 미국 내셔널 리질리언스와 이탈리아 BSP 파마슈티컬스 등과도 원료 생산 계약을 맺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본사를 둔 SK팜테코를 CDMO 파트너로 선택하는 데 부담이 적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SK팜테코의 릴리 수주 가능성은 지난해 말부터 시장에서 제기됐다. 글로벌 제약사와 최대 2조원 규모의 비만약 원료 생산 계약 소식이 나오면서다. 당시 시장에서는 노보 노디스크는 자체 생산 체제를 갖고 있어, 외부 CDMO를 활용하는 릴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SK팜테코 측은 당시에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