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 소속 연구원이 합성 물질의 약효평가 결과를 검토하고 있다./종근당

신약 연구·개발(R&D)만 전문으로 하는 법인을 신설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늘고 있다. 신약 개발 위험을 분산하고, 후보물질의 기술 수출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종근당(185750)은 신약 개발 전문 자회사인 아첼라(Archela Inc)를 신설했다고 22일 밝혔다. 아첼라 대표이사에는 종근당연구소 출신 이주희 박사가 임명됐다.

아첼라는 신약 연구가 아니라 개발에만 집중하는, 이른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형태로 운영하는 전문 회사다. NRDO 기업은 학계나 연구기관, 디른 기업 등에서 도입한 신약 후보물질로 동물실험 같은 전임상과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개발 단계를 진척시켜 후보물질의 가치를 높인 후 다른 기업에 기술이전하는 사업 전략이다.

회사에 따르면 아첼라는 종근당이 개발해 온 신약 후보물질 3개의 개발을 맡는다. 종근당 관계자는 "종근당 내 기존 연구 조직이나 다른 파이프라인(신약 개발군)은 그대로 두고 후보물질 3개만 가져가는 형태"라며 "기존 연구 조직을 분할한다는 개념보다는 파이프라인을 떼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신설 자회사를 통해 될성부른 신약 후보물질에 자원을 집중해, 개발 속도를 높이고 글로벌 기업 기술 수출과 개발 성공 가능성 높이려는 전략인 셈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원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삼성바이오에피스

다른 기업들은 초기 연구도 포함시켜 R&D 전문 법인을 별도로 신설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과 신약 R&D을 담당해 온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인적 분할하고, 신설 지주회사 삼성에피스홀딩스에 편입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담당하는 존속 법인으로 남고, 신설 법인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승계 받아 자회사 관리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투자를 하는 구조다. 오는 30일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거래가 중지되고,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는 11월 24일 변경 상장·재상장할 예정이다.

앞서 대웅제약(069620), 동아제약, 일동제약(249420), 제일약품(271980) 등이 R&D에 집중하는 별도의 자회사를 세웠다. 일동홀딩스(000230)는 2019년 5월 신약 개발 전문 기업 아이디언스를 출범한 데 이어 2023년 11월 R&D 전문 독립법인 유노비아를 설립했다. 대웅제약은 2017년 인수한 한올바이오파마(009420)와 2020년 대웅제약에서 처음 분사(스핀아웃)한 신약 개발 전문 기업 아이엔테라퓨틱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제일약품은 2020년 5월 온코닉테라퓨틱스(476060)를 출범하고,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자큐보'의 권리를 온코닉테라퓨틱스에 넘겼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작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동아제약은 지주사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를 정점으로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 동아제약에서 인적 분할해 2013년 3월 신설된 자회사 동아에스티(동아ST)가 전문의약품 개발과 해외 사업을 맡고 있다.

2024년 12월 19일 서울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화학합성물 기반 신약 개발 사업을 영위하는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코스닥시장 상장기념식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영 한국IR협의회 부회장, 민경욱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 김존 온코닉테라퓨틱스(주) 대표이사, 이성 NH투자증권 사업부대표, 강왕락 코스닥협회 부회장. /한국거래소

제약사들이 R&D 법인을 신설하거나 인수하는 것은 국내 제약산업 구조가 내수·복제약 중심에서 수출·혁신 신약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관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미래비전위원장(GI파트너스 대표)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신약 개발이 필수"라며 "R&D 전문 회사를 세워 신약 성공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R&D 전문 자회사 설립엔 재무적 셈법도 작용하고 있다. 신약 개발은 10년 이상 걸리는 데다 막대한 비용이 든다. 개발 여정에서 지연과 실패 등 여러 변수도 생길 수 있다. 미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11~2020년 10년간 미국에서 임상시험 단계에 올랐던 치료 후보물질의 최종 개발 성공률은 7.9%에 그쳤다. 도중에 신약 개발이 실패하면 기업의 주가와 수익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위험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도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신설 비상장 기업을 통해 외부 자금 조달 여력을 확보하려는 전략도 깔려 있다. R&D 전문 신설 자회사를 비상장 형태로 두고 벤처캐피털(VC), 기관투자자, 전략적 투자자(SI)를 확보한 뒤 R&D 성과와 가치를 키워 추후 별도 상장해 외부 자금을 유치하는 형태다. 실제로 아첼라 별도 상장 추진 가능성에 종근당 측은 "이른 얘기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회사는 복제약, 전문 의약품, 일반 의약품 영업에 집중해 안정적인 실적 성장세를 유지하고 신설 신약 개발 전문 자회사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중장기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자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키워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