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 위고비(Wegovy)를 보유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주가가 29일(현지 시각) 21.83% 폭락하며 시가총액이 700억달러(약 96조원) 증발했다.
노보 노디스크가 이날 올해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한 영향이다. 이 회사는 올해 전체 매출 증가율 예상치를 5월에 제시했던 13~21%보다 크게 낮은 8~14%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연간 영업이익 성장률 전망 역시 16~24%이던 것을 10~16%로 크게 낮췄다.
허혜민 키움증권 제약바이오 연구위원은 "미국 내 위고비의 성장이 둔화하고 있고, 다른 국가에서도 예상보다 위고비 침투율이 낮은 게 주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5년 1분기 글로벌 위고비 매출은 173억6000만 덴마크크로네(3조7141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83% 늘었지만 시장 예상치보다 7% 낮은 수치였다.
실적 전망치뿐 아니라 대표이사(CEO) 교체도 투자 심리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날 노보 노디스크는 마지아르 마이크 도우스다르(Maziar Mike Doustdar) 해외사업부문 부사장을 새 CEO로 임명해, 오는 8월 7일부터 대표직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회사를 8년간 이끈 라스 프루에르고르드 요르겐센(Lars Fruergaard Jørgensen) 대표는 지난 5월 사임했다.
위고비 출시 이후 한때 유럽 시가총액 1위로 올랐던 노보 노디스크에 빨간불이 켜지자, 당뇨·비만 치료제 분야 경쟁사인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주가도 이날 약 5% 하락했다. 미국 잭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브라이언 멀버리(Brian Mulberry) 매니저는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당뇨약 시장에서의 둔화 신호가 전반적인 매도세를 유발해 일라이 릴리의 주가 하락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는 모두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을 모방한 약물로,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를 보고 당뇨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나중에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돼 비만약으로 발전했다.
둘 다 출시 초기엔 미국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품귀 현상이 생길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한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위고비와 젭바운드 공급난 대안으로 복제약 생산도 허용했다.
최근 비만약 공급이 확대되면서 수급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투약을 멈추면 다시 체중이 불어나는 요요 현상, 근육량 감소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소비자들의 기대와 수요가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매도세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가 미국 시장을 주도하고 있어 비만 치료제 성장 둔화는 노보 노디스크만의 문제라는 평가도 있다. 경쟁사의 위기는 오히려 일라이 릴리엔 긍정적이란 해석도 나온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젭바운드가 시장의 약 60%를 차지해 위고비를 제쳤다. 일라이 릴리가 발표한 젭바운드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5% 늘어 127억달러(약 17조원)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일라이 릴리의 다음 주 실적 발표가 회사의 주가 향방을 가를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즈 에밀리 필드 애널리스트는 "일라이 릴리가 강력한 재무 실적을 발표해야 투자자들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만약 시장의 성장은 새로운 신약에도 좌우될 수 있다. 두 회사는 모두 기존 비만 치료제를 뛰어넘을 새로운 성장동력도 찾고 있다. 둘 다 환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주사제형의 비만 치료제를 먹는 약(경구용)으로 개발하고 있다. 릴리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의 임상시험 결과를 올해 말까지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판매 둔화 우려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라이 릴리가 다음 달 한국에 마운자로를 출시하면서 위고비의 독주 체제가 깨지기 때문이다. 한국 노보노디스크제약은 그동안 위고비의 국내 판매 유통을 쥴릭파마(총판)·블루엠텍(도매) 등과 협업했는데, 최근에는 종근당(185750) 같은 국내 제약사와 공동 판매를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