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이 올해 초부터 미국 시장에서 신종코로나19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와 항암제 등 주요 의약품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다만, 미국 내 약가 인상이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전망이다. 국내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확정된 의약품 가격이 타국에서 가격을 올렸다는 이유로 조정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미국 제약전문지인 피어스파마는 3일(현지 시각) 미국 화이자, 영국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 프랑스 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달부터 약 250개의 브랜드 의약품에 대한 미국 정가를 인상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화이자의 코로나19 치료제인 팍스로비드, BMS의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인 아베크마·브레얀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이번 인상으로 신약 개발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인상 폭이 가장 큰 의약품은 레디언트 파마슈티컬스의 시스틴축적증 치료제 시스타란(Cystaran) 점안액으로, 기존 2300달러(338만원)에서 20% 올라 2760달러(405만원)가 된다. 이 회사의 호지킨병 치료제 마툴란(Matulane)으로, 기존 약 1460달러(약 214만원)에서 약 1680달러(250만원)로 15% 오른다.
화이자는 올해 팍스로비드를 비롯해 총 60개 이상의 의약품 가격을 인상한다. 지난해 인상한 의약품은 124개로 전체 25% 이상을 차지했다. 팍스로비드 가격도 3% 오를 예정이다. 화이자 관계자는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낮은 수준으로 가격을 조정했다”며 “이번 인상으로 의약품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BMS는 아베크마와 브라얀지 가격을 각각 6%, 9% 올렸고, 사노피는 약 12개의 백신 가격을 2.9%~9% 인상했다.
피어스파마에 따르면 이번에 인상되는 의약품 규모는 지난해 연말에 인상 계획을 발표한 140개 품목보다 100개 이상 늘었다. 다만 지난 2024년 1월에 약값이 인상된 품목이 500개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줄었다. 또 이들 의약품의 평균 인상 폭은 5% 미만으로 최근 10년간 줄어드는 추세다. 주요 의약품 가격 인상률의 중앙값은 2015년 9%에서 2024년 4.5%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이들 제약사의 의약품 가격 인상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달 미국 비영리 단체인 임상경제성평가연구소(ICER)는 2023년 가격 인상폭이 컸던 10개 의약품을 두고 “가격 인상을 뒷받침할 적절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미국 환자들이 8억1500만 달러(한화 1조2000억원)를 추가로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ICER이 지적한 의약품은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빅타비, 존슨앤존슨의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다르잘렉스, 노바티스의 심부전 치료제 엔트레스토, 엑셀릭시의 항암제 카보메틱스, 화이자의 류마티스 관절염·궤양성 대장염 치료제인 젤잔즈 등이다.
이번 인상이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전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제약사가 의약품의 가격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국내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확정된 의약품의 가격을 다시 조정하지는 않는다.
심평원 관계자는 “국내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확정된 이후 종종 가격 조정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원료의약품의 가격 인상, 생산의 어려움 등 특별한 이유로 개별 제약사가 인상을 요청한 경우”라며 “타국에서 가격을 인상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급여 가격을 올린 경우는 현재까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