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 세계 시장에서 매출액이 가장 컸던 의약품은 미국 머크(MSD)의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였다. 그 다음이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당뇨약인 ‘오젬픽’이었다. 반면 지난해 매출액 규모 2위였던 미국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는 특허 만료에 따라 복제약들이 나오면서 10위권밖으로 밀려났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18일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시장에서 매출액 규모 상위 1~10위를 기록한 의약품을 발표했다. 블룸버그(Bloomberg)의 컨센서스와 네이처 드러그 디스커버리(Nature Drug Discovery)가 제시한 매출액을 근거로 순위를 매겼다. 동시에 2025년 매출 1~10위 의약품도 전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291억달러(약42조원) 규모로, 작년에 이어 매출액 규모 1위를 지킬 전망이다. 면역 항암제는 암세포를 직접 공략하지 않고 인체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원리의 치료제다. 몸속에 있는 면역 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존 항암제와 달리 독성 부작용 우려가 없고 치료 효과도 뛰어나다.
키트루다는 2015년 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투여해 뇌까지 전이된 피부암 흑색종을 완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약은 2021년 1분기 이후 15분기 연속 매출이 증가했다. 매출의 지속적인 성장 비결은 치료 효과를 인정받은 적응증을 늘린 데 있다. 치료 효과를 인정받은 암종만 현재 30가지 이상이다. 폐암에서만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1차 단독 요법을 비롯한 6가지 적응증을 보유하고 있다.
2위는 당뇨약 오젬픽, 3위 아토피 치료제 듀피젠트(사노피·리제네론), 4위 항응고제 엘리퀴스(BMS·화이자), 5위 에이즈 치료제 빅타비(길리어드)가 차지할 전망이다. 6위는 당뇨약 마운자로(일라이 릴리), 7위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다잘렉스(J&J), 8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카이리치(애브비), 9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J&J), 10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옵디보(BMS) 순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주목할 만한 변화는 대사질환 치료제의 약진이다. 작년에 연 매출액 3위였던 당뇨약 오젬픽이 휴미라를 제치고 2위에 올랐고, 경쟁약 마운자로도 단숨에 6위에 오르며 처음 10위권내에 진입했다. 오젬픽과 마운자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계열 약물이다. 인체의 GLP-1 호르몬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한다. 동시에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신경세포를 조절해 식사 후 식욕을 떨어뜨리고 포만감을 유발한다. 오젬픽과 마운자로는 이를 모방한 약물로 혈당과 비만을 조절·치료하는 원리의 약물이다.
내년에도 의약품 시장 내 순위 변동이 잇따를 전망이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매출 성장을 이끌어온 주요 의약품들이 잇따라 특허 만료에 직면하면서, 매출 성장이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여러 블록버스터(연매출 10억달러 이상 의약품)의 특허 만료에 따른 매출 감소 추세가 2028년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며 “2026년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될 것을 감안하면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의 저성장 국면이 향후 3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례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는 올해 하반기 특허 만료로 내년 매출액이 약 3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스텔라라는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제약법인 얀센이 개발했다. 지난해 전 세계 매출은 약 14조원 규모였지만 이미 복제약(바이오시밀러)들이 이 시장에 출시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셀트리온(068270)·동아에스티(170900) 등이 각각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피즈치바’, ‘스테키마’, ‘이뮬도사’ 개발에 성공해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과 유럽의약품청(EMA) 승인 권고를 획득,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권 연구원은 “내년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이 소수의 제약사 위주로 편중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대형 제약사 중 2026년까지 5% 이상 매출 성장률을 보일 제약사는 대사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혁신적인 연구개발(R&D) 성과를 내면서 관련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 정도”라고 밝혔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기존 당뇨약을 각각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젭바운드로 발전시켜 올해 출시했다. 유진투자증권 보고서는 이 비만약들이 내년 매출액 상위 10위권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3분기부터 노보 노디스크의 당뇨·비만치료제 오젬픽·위고비의 매출액이 키트루다 매출액을 추월했고, 마운자로·젭바운드의 매출도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