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건당국이 지난 2022년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의 복제약 판매를 내년 2월부터 금지한다. 젭바운드의 공급 부족 문제가 지난 10월 해소된 데 따른 조치인데, 현지 복제약 제조사들의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반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9일(현지 시각) 성명을 통해 “젭바운드의 부족 사태가 완전히 해결됐다”며 “앞으로 60일 이후인 내년 2월 18일부로 중소 제약사들과 약국들의 복합제를 비롯한 복제약 제조·판매가 중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FDA는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약물들을 ‘공급 부족 목록(shortage lists)’에 올려 관리하고 있다. 이 목록에 오른 약물에 대해서는 FDA의 허가를 받은 조제전문약국(compounding pharmacies) 또는 중소 제약사의 동일한 성분의 복합제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미국 일라이 릴리의 티르제파타이드는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을 모방한 약물이다.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하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느끼고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를 낸다. 당뇨 치료제인 마운자로로 먼저 승인된 뒤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돼 지난해 11월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로도 출시됐다.
마운자로 출시 후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자 2022년 12월 먼저 공급 부족 목록에 포함됐고, 이후 올해 4월 젭바운드도 목록에 올랐다. 약효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는 약 2년간 공급 부족 약물로 지정돼 복제약 판매가 이어졌다. 복제약 판매의 한시적 허용이 오리지널 의약품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던 만큼, 일라이 릴리는 이 목록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약 12조원을 투자해 미국과 아일랜드 공장 등 생산 시설을 확충했다.
젭바운드는 미국에서도 공보험에 포함되지 않아 가격 부담이 큰 편이다. 현지 가격은 한 달 처방 기준 약 650달러(한화 86만원)다. 복제약 가격은 최소 월 약 199달러(28만9000원)로, 오리지널 의약품의 5분의 1 수준이다. 이에 복제약을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다. 지난 7월 기준 미국인 200만명 이상이 위고비와 젭바운드의 복제약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복제약은 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실제 미 FDA 승인을 받지 않은 온라인 판매업자가 불법 제조해 복제약을 파는 문제도 드러났다. 오리지널 비만약 제조 제약사들도 환자의 안전 우려를 이유로 앞세워 복제약 제조를 금지해 달라고 FDA에 요청했다.
일라이 릴리는 지난 8월 “우리 비만약의 복제약 제품에서 불순물이 발견됐으며, 이는 환자가 약물에 대한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안전성이 우려된다”며 FDA에 성명을 냈다. 젭바운드와 경쟁하는 위고비 제조사인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도 지난 10월 같은 취지로 FDA에 성명을 냈다.
FDA의 복제약 판매 금지 조치로 복제약 전문 업체·약국들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복합제를 개발해 판매해 온 미국 힘스앤드허스헬스의 주가는 지난 10월 젭바운드의 목록 제외 발표 직후 9% 이상 급락했고, 이날 FDA 성명 발표로 전일 대비 8%가량 떨어졌다.
복제약 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스콧 브루너 미국 약국조제연합(Alliance for Pharmacy Compounding) 회장은 “규제 당국이 공급 부족이 정말 끝났는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며 “200만명이 넘는 기존 소비자들의 수요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이 피해는 모두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FDA는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 생산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수요가 가용 공급량을 넘어설 경우 또다시 공급 부족 목록에 포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안전성이 논란이 된 비만약 복제약은 국내에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산 복제 비만약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의약품의 해외 직구는 불법이지만, 개인이 해외여행에서 사온 의약품을 일일이 단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자체 모니터링과 신고를 바탕으로 온라인을 통한 의약품 판매·광고가 확인될 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사이트 차단을 요청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비만 치료제와 같은 전문의약품은 반드시 병원과 약국을 방문해 의사 처방, 약사의 조제·복약 지도에 따라 정해진 용법·용량을 지켜 투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현재 미국에서 한시 허용되고 있는 비만약의 복제약 또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