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교통회관에서 열린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있다./염현아 기자

한미약품(128940)그룹 창업자 일가 형제와 모녀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형제가 한미약품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추진한 계획이 모두 무산됐다.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그대로 이사회에 남게 됐고, 형제 측 박준석·장영길 사내이사의 선임안은 자동 폐기돼 불발됐다.

이로써 한미약품 이사회는 모녀(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를 비롯한 신동국 회장·킬링턴 유한회사) 등 4자 연합 측 7명, 형제(임종윤 사내이사·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측이 3명으로 7대 3 구도가 유지된다.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교통회관에서 열린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구성을 형제 측에게 유리하도록 변경하는 안건을 두고 의결권이 있는 주주 대상 찬성·반대 투표를 진행한 결과, 찬성 표가 출석 주주의 3분의 2인 66.7% 이상이 나오지 않아 부결됐다. 의결권이 있는 전체 주식 수(1268만214주) 가운데 출석률은 80.59%(1021만9107주)로 집계됐다. 박 대표 해임안에 찬성하는 주식은 전체 출석 주식의 53.62%547만9070주였다.

박재현 대표는 이날 주주들을 향한 인사말씀에서 “오늘은 한미약품의 확고한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주주님들의 재신임을 받는 날이자 그룹의 거버넌스 이슈와 한미약품의 사업을 명확히 분리하는 날이며, 오로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한미약품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날”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교통회관에서 열린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있다./염현아 기자

이번 임시 주총에는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008930)가 주주 제안한 박재현 사내이사 해임, 신동국 기타 비상무이사 해임, 박준석 사내이사(한미사이언스 부사장) 선임, 장영길 사내이사(한미정밀화학 대표) 선임 등 4가지 안건이 상정돼 있었다. 형제 측은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박재현 대표와 신동국 회장을 해임하고, 박준석 부사장과 장영길 대표를 선임하는 전략을 꾀했다. 기존 7대 3 구도에서 5대 5 구도를 만들고자 했던 의도로 풀이된다. 당초 형제 계획은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대표를 동생이 맡고, 한미약품 대표는 형이 맡는 그림이었다.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도 예정대로 한미사이언스 의결권을 행사했다. 앞서 4자 연합은 임 대표의 임시주총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기 위한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이 지난 17일 이를 기각했다.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 한미약품의 최대주주는 41.98%를 가진 한미사이언스다.

한미약품 지분의 10.23%를 가진 2대 주주 국민연금도 형제 측이 제안한 박 대표, 신 이사 해임 등 모든 안건에 ‘반대’ 표를 냈다. 국민연금은 형제 측의 해임 사유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미약품 이사회 장악을 위한 형제 측 계획은 무산됐지만, 모녀와 형제의 경영권 분쟁은 내년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총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28일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에서 4자 연합이 제안한 이사회 확대 방안이 무산되며, 양측 이사진이 5대 5로, 동률이기 때문이다. 4자 연합은 그동안 지분을 매입해 49% 가까이 의결권을 확보한 만큼, 내년 3월 주총에선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미사이언스는 이날 주총이 끝난 후 보도자료를 통해 임종훈 대표의 입장을 밝혔다. 임 대표는 “주주분들의 결정을 존중하며, 한미약품을 포함해 그룹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의견과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겠다”며 “지주사 대표로서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으나 그룹 전체가 최선의 경영을 펼치고, 올바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