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 이후 달러가 초강세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 상승 흐름이 이어진다면 의약품, 의료기기를 수출하거나 해외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국내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기업의 실적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반면, 의약품 원료 수입과 글로벌 임상 추진 등의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 세계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트럼프의 관세 강화 정책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18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400원 선을 넘어 상승 흐름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보다 0.1원 오른 1439원에 개장했다.
수입보다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은 달러 강세로 혜택을 볼 수 있다.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1억원을 받던 게 지금처럼 환율이 1400원을 넘으면 1억4000만원이 돼 실적에도 기여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삼성바이오에피스, SK바이오팜(326030), 셀트리온(068270), 휴온스(243070), 삼진제약(005500), 대원제약(003220) 등이 수출 실적의 환차익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셀트리온의 매출은 달러나 유로로 결제된다”며 “물론 수입도 있지만 수입 규모가 크지 않아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압박은 없다”고 말했다.
GC녹십자(006280)는 면역글로불린 혈액제제 ‘알리글로’를 미국 현지에서 직접 판매하고 있다. 유한양행(000100)은 미국 존슨엔존슨의 자회사인 얀센에 기술 수출한 항암제 ‘렉라자’의 판매 로열티로 약 10~15%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환차익도 누릴 수 있다.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수출 실적이 가장 컸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국내 업계 최초로 연매출 4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작년 미국 수출 실적은 전년보다 13.7% 늘어 9711억원, 유럽 수출 실적은 전년보다 31.5% 늘어 2조3538억원 규모였다. 리도카인 성분 국소마취제와 생리식염 주사제 등을 수출하는 휴온스의 작년 북미 시장 연간 수출액은 전년보다 113% 늘어 262억원을 기록했다.
오스템임플란트도 미국, 중국, 일본 등 약 30개국에 총 36개 현지 법인을 운영하며 임플란트 제품을 직접 판매·영업하고 있다. 미용 의료기기 기업 클래시스(214150)도 고강도 집속형 초음파(HIFU) 장비 ‘슈링크’와 고주파(RF) 장비 ‘볼뉴머’ 등을 해외 국가에 수출 중이다.
반면 의약품 수입 업체와 글로벌 임상을 추진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원화 약세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바이오 업체 관계자는 “미국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거나 임상을 추진해야 하는 신약 개발 기업 입장에선 환율로 인해 비용 부담이 더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관세 정책도 주요 변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플로리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관세는 미국을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서 필수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관세를 조정하고 무역 제한을 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미국 내 필수 의약품의 최대 생산국은 중국이다.
국내 제약 바이오 업계는 트럼프 관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대다수 의약품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필수품으로 분류돼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셀트리온은 미국에 의약품 위탁생산(CMO)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어 관세가 사업에 제약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나머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모두 선조치했다”고 말했다.
휴온스 관계자는 “주요 수출 제품인 리도카인 주사제는 미국 내에서 품귀 현상을 겪는 기초 의약품인 데다, 미국 내 생산업체 1~2곳에 불과하다”며 “만약 관세가 늘더라도 미국 시장 내 리도카인 제품이 대부분 수입이라 경쟁사도 다 같이 관세가 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근희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미국이 의약품 관세 정책을 시행한다면, 이부프로펜, 하이드로코르티손과 같은 필수 의약품에 대해 해외가 아닌 미국 생산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의약품은 장기 만성질환 치료제 중심이라 필수 의약품에 초점을 둔 미국 의약품 관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국내 업계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