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가 국내 증시에 충격을 주면서 제약·바이오 업체들의 기업공개(IPO)에도 불똥이 튀었다. 회사들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로 투자 심리가 살아날 것을 기대하며 상장을 준비했지만, 시장이 불확실해지면서 공모가를 낮추거나 상장을 연기하는 상황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방사성 의약품 전문업체인 듀켐바이오와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플랫폼 기업 온코크로스, 제일약품의 신약개발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 등이 희망 공고가보다 낮은 공모가를 줄줄이 확정했다.
듀켐바이오는 기관 경쟁률과 의무보유 확약 등이 모두 부진해 당초 희망 공모가 범위 하단인 1만2300원~1만4100원 대비 35% 낮은 8000원으로 공모가를 결정했다. 온코크로스도 최종 공모가를 당초 희망 공모가 범위 하단보다 약 28% 내린 7300원으로 확정했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공모가를 약 19% 내린 1만3000원으로 정했다.
공모가를 낮추면, 자금 조달 규모가 당초 회사가 목표한 금액보다 줄어든다. 제약·바이오 기업은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에 실탄으로 활용한다. 공모가가 낮춰지면 R&D 추진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상장을 포기하고 아예 빈 손이 될 수도 있다.
올해 바이오 IPO ‘대어’로 꼽혔던 오름테라퓨틱은 이달 예정된 코스닥 상장을 내년으로 미뤘다.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 수출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며 주목받았으나,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기대 이하의 결과를 받으며 상장 철회를 택했다.
오름테라퓨틱은 핵심 신약개발 과제이던 표적단백질분해제(TPD) 후보물질 ORM-5029가 글로벌 임상 1상 시험 도중 중대한 이상 반응이 보고돼 임상시험 환자 모집이 중단된 영향을 받았다. 당시 회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고 후 안전성에 대한 종합 평가가 완료되고 위험 완화 계획이 수립될 때까지 신규 임상시험 참가자 등록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선 정국 혼란이 주가 변동성을 키우고 있으나, 결국 중요한 것은 국내·외 통화 정책과 시장 경기라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시 코스피가 하락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동반 기준금리 인상이 중요한 이유였고, 2004년과 2017년 코스피 반등은 수출 경기 호조가 배경이었다”며 “내년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수출 경기의 반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 선거 불확실성이 해소된 올 12월에 여러 바이오텍의 기술 이전, 인수합병(M&A) 거래가 나온다면 미국 중소형 바이오텍의 긍정적인 주가 흐름과 함께 국내 코스닥 제약 지수도 연동돼 동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지난 트럼프 1기 당선 시기 주가 흐름을 복기하면, 트럼프 당선에 따른 불확실성 부각되며 2016년 11월 코스피 의약품 지수는 제한적으로 상승했고, 코스닥 제약지수는 7.1% 하락했다가 당선으로 선거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12월에 각각 3.7%, 7.5% 상승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