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올해 신약 개발은 단연 항체-약물접합체(ADC)가 이끌었다. 2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ADC 관련 인수합병(M&A)과 파트너십 규모는 올 한 해에만 약 1000억달러(한화 140조원)에 달했다.
ADC는 암세포와 결합하는 항체에 약물을 붙인 차세대 항암제이다. 목표인 암세포에 정확하게 약물을 전달해 ‘유도미사일 항암제’로도 불린다. 항암 효과는 높이고 정상 조직의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인 리서치앤마켓은 지난달 리포트에서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 140여 곳에서 530건 이상의 ADC 신약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 47%는 전임상시험 또는 후보물질 발굴 단계에 있다. 국내 기업도 신약 개발은 물론 위탁개발생산(CDMO), 인공지능(AI) 진단·예측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개발(R&D)을 하고 있다.
◇3년 후 40조원 시장…AZ·다이이찌 ‘엔허투’ 1위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ADC 시장 규모는 2015년 10억달러(한화 1조4000억원)에서 오는 2028년 280억달러(한화 39조312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세계 최초 ADC 약물은 2000년 미국 화이자가 개발한 항암제 마이로탁이다. 지금은 독성 문제로 시장서 철수했다.
이후 화이자와 일본 다케다가 공동 개발한 림프종 치료제 애드세트리스, 스위스 로슈의 유방암 치료제 캐싸일라,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와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 미국 길리어드의 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 등 13종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들 약물은 혈액암·고형암 분야에서 20여 종의 암종과 질환에 대한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하는 ADC 항암제는 AZ·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다. 유방암의 HER2 단백질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 트라스투주맙과 암세포를 사멸하는 물질인 데룩스테칸을 결합한 약물이다. 지난 2022년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임상 3상 시험 결과 발표에 기립 박수를 받으며 전 세계에 ADC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4월 FDA로부터 유방암을 비롯한 모든 고형암에 대한 치료제로 승인받았으며, 지난해 27억8000만달러(3조8520억원)의 매출을 올려 블록버스터 의약품 반열에 올랐다.
국내 기업들도 ADC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직 개발이 완료된 국산 ADC 항암제는 없지만, 여러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특허 등록과 지분 투자, 공동 연구 등을 펼치고 있다. ADC 신약 개발은 물론, 위탁생산 분야에도 진출했다.
국내 대표적인 ADC 개발 기업은 리가켐바이오(141080)다. 항체 특정 부위에 원하는 양의 약물을 결합시키는 링커(연결부) 기술인 콘쥬올(ConjuAll)을 개발해, 현재까지 기술이전 계약만 총 14건을 성사시켰다. 누적 계약 규모는 9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난달에는 일본 오노약품과 1조원 이상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韓리가켐·에임드 등 ADC 임상…CDMO도 합류
리가켐바이오는 2019년 7개에 불과했던 ADC 후보물질을 4년 만에 3배로 늘렸다. 글로벌 제약산업 정보업체인 사이트라인에 따르면 리가켐바이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25개의 ADC 신약 후보물질군(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리가켐 혼자 전 세계 ADC 개발 건수의 5%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신약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현재 임상시험에 진입한 국내 ADC 개발 기업은 리가켐과 에임드바이오 2곳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존슨앤존슨의 자회사인 얀센이 2조2000억원에 계약한 리가켐의 폐암 신약 후보물질 LCB84은 내년 상반기 글로벌 임상 1상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길리어드의 트로델비와 AZ·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 후속 물질인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은 임상시험에서 폐 독성을 비롯한 부작용이 보고된 반면 LCB84는 독성이 현적하게 적어 업계 기대주로 떠올랐다. 리가켐은 에이비엘바이오(298380)와 또다른 ADC 물질인 ABL202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에임드바이오도 고형암 대상 후보물질인 AMB302의 1상을 진행 중이다.
셀트리온(068270)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넘어 ADC 신약개발사로서 포부를 밝혔다. 2022년 국내 ADC 개발사인 피노바이오와 약 1조7000억원 규모의 공동연구 계약을 맺고, ADC 후보물질 2종에 대한 전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통 제약사들도 ADC 신약개발을 위한 협업을 서두르고 있다. 동아에스티(170900)는 지난해 말 ADC 전문업체인 앱티스를 인수해 ADC 플랫폼 기술을 확보했다. 앱티스는 링커 특화기술인 앱클릭을 보유하고 있다. GC녹십자(006280)는 카나프테라퓨틱스와 이중항체 ADC 공동개발을 위한 계약을 맺었다. 삼진제약(005500)도 에이피트바이오와 함께 ADC 개발에 착수했다.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알테오젠(196170)은 AZ·다이이찌의 정맥 주사제인 엔허투를 피하주사(SC) 제형으로 개발하는 계약을 맺었다. ADC 의약품을 SC 제형으로 개발하는 것은 세계 최초다.
개발 기업이 늘어나면서 관련 생산 기술 투자도 앞다퉈 늘리는 추세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인천 송도 바이오캠퍼스 별동에 500L 규모의 ADC 전용 위탁개발생산(CDMO) 시설을 짓고 있다. 연내 공사를 마치고 내년 1분기부터 본격적인 ADC 수주와 생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ADC 기술은 링커와 페이로드, 항체 기술이 모두 필요한 만큼, 알테오젠·에이비엘바이오 등 우리 기업이 각자 특화돼 있는 ADC 플랫폼 기술 분야에서 협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 플랫폼을 구축해 신약 연구개발, 생산, 인허가 등 전 과정에서 역량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