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만난 황준성(55) 큐피크바이오 대표는 “필라그린에 이상이 생기면 피부 장벽 기능이 손실되고 결과적으로 항원이 침투해 염증이 발생한다”며 “필라그린 이상 여부를 조기 진단하는 진단장비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염현아 기자

아토피 피부염은 가려움증과 발진, 건조함이 동반되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으로, 소아 10명 중 1명이 겪는 흔한 질환이다. 최근에는 환경 오염, 식습관 변화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아토피 환자는 2018년 92만명에서 2022년 100만명으로 늘었다.

아토피 피부염이 발생하는 데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 대표적으로 피부 장벽을 보호하는 ‘필라그린’이라는 기능이 저하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경우다. ‘필라그린의 기능소실 돌연변이’라고도 불리는 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아토피 피부염 환자는 유럽에 특히 많다. 전체 아토피 환자의 절반에 달한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는 20% 정도가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15일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만난 황준성(55) 큐피크바이오 대표는 “필라그린에 이상이 생기면 피부 장벽 기능이 손실되고 결과적으로 항원이 침투해 염증이 발생한다”며 “같은 아토피 환자라 해도 필라그린이 정상인 경우와 이상이 있는 경우는 예후가 다른데, 이상이 있으면 아토피도 중증으로 앓게 되며, 천식과 피부 습진의 위험이 3배 높아진다”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 중 절반 이상은 어린이와 청소년인데, 필라그린 이상이 없는 경우 통상 4~9세 때 호르몬 변화로 증상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필라그린 변이를 가진 아토피 환자의 경우는 다르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성인기는 물론 평생 아토피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필라그린의 이상 여부는 환자마다 천차만별인 아토피 질환에서 중요한 진단 기준이다. 필라그린 이상이 있다면 일반 아토피와는 다른 치료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필라그린 이상이 있는 환자를 진단하는 방법이나 치료제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필라그린 이상이 있어도 이를 모른 채 기존과 동일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황 대표는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거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25년간 피부과학 연구에 매진해왔다. 생명연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2020년 3월 아토피 피부염 정밀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큐피크바이오를 분사창업(스핀오프) 했다. 그는 “필라그린 유전자 이상과 아토피와의 연관성이 2003년에 발견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며 “필라그린 이상은 유전병의 일환으로 한평생 고통받는 만큼 정밀 진단과 치료법이 시급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큐피크바이오는 현재 바이오니아(064550)와 함께 진단장비를 개발 중이다. 내년 하반기 유럽 의료기기 인증(CE) 받아 제품 출시를 목표하고 있다. 정밀 진단 기술과 함께 정밀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다음은 황 대표와의 일문일답.

2011년 국제학술지인 '영국의학저널(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필라그린 연구 그림.

–25년간 국내외에서 피부염을 연구했다.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뭔가.

“미국 NIH에서 생명연으로 온 뒤 10년간 굵직한 국책 사업 과제 수행을 맡았는데, 이때 생명연 김보연 박사님과 함께 필라그린 관련 연구를 하게 됐다. 필라그린 이상 여부는 검출 방식 자체가 까다로운데, 전용 장비와 연결해 개발하면 분명 시장성이 있다고 봤다. 마침 2015년에 미국 오바마 정부가 ‘정밀의료 이니셔티브(Precision Medicine Initiative)’를 발표하면서 개인별 특성에 따른 맞춤형 치료·예방이 트랜드로 떠올랐고, 당시 창업 붐이 일면서 한국특허전략개발원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창업의 길을 걷게 됐다. 1998년도 IMF 때 단돈 10만원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을 정도로 유별난 도전 정신도 한몫했다.”

–기존 진단법에는 어떤 한계가 있나.

“진단은 주로 문진이나 육안 검사만으로 이뤄진다. 이로는 필라그린 이상 여부를 결코 걸러낼 수 없다. 아토피는 크게 피부 장벽에 문제가 있는 외인성과 면역 체계 이상으로 나타나는 내인성으로 나뉘는데, 필라그린 이상 여부를 알면 각 특성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있다. 4세 이하 조기 또는 산전에 정밀 진단이 이뤄진다면 정밀 치료도 가능해진다.”

–필라그린 이상 여부는 어떻게 진단하나.

“인공 DNA가 탐침 역할을 하는 PNA 프로브라는 방식을 사용했다. 현미부수체(인간의 전체 유전자 중 DNA를 구성하는 염기가 반복된 부위)를 최고 정확도로 잡아내는 기술이다. 여기에 형광 물질을 붙여 환자 혈액에서 필라그린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알려준다. 큐피크바이오는 이걸 PCR 시약으로 개발을 마쳤다. 이제 이 진단시약을 바이오니아의 장비와 결합시키는 작업이 남아 있다. 각 병원에서 이 체외진단 장비를 통해 검사·판독 등 정밀 진단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상용화 계획이 궁금하다.

“현재 개발된 진단시약을 바이오니아의 장비에 연동시킨 시제품을 내년 하반기에 열리는 유럽 피부질환 학회에서 선보이는 게 목표다. 진단키트로 진단된 결과를 자동화까지 하는 작업을 거쳐, 미충족 수요가 많은 유럽 시장에서 의료기기 인증(CE)을 비롯한 인허가 절차를 받아 상용화할 계획이다.”

–진단기기 외에 개발 중인 게 있다면.

“진단 기기와 함께 이들을 치료할 맞춤형 아토피 피부염 신약개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동물실험을 비롯한 전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필라그린 변이를 가진 아토피 환자를 진단해 내인성과 외인성으로 나눠 정확한 병인을 진단해 각 특성에 맞는 맞춤신약을 제공하겠다는 거다. 생명연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에 안전성이 확인된 허가 물질에 대한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려고 한다. 아토피는 0~4세 환자가 가장 많은데, 듀피젠트를 비롯한 기존 치료제 중에는 2세 이하 영유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 이들에게도 안전한 치료제를 만드는 게 목표다. 필라그린 단백질을 활용하면 아토피를 시작으로 건선, 피부 노화,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피부 질환으로 치료 대상을 넓힐 수 있다.”

참고 자료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011), DOI: https://doi.org/10.1056/NEJMra101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