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적인 바이오 기술과 식품 산업, 그리고 정부의 수준 높은 규제 시스템 등 배양육 산업을 이끄는 데 필요한 기본 3요소를 완벽하게 갖췄다. 점점 커지고 있는 배양육 산업을 한국이 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26일 서울 성수동 심플플래닛에서 만난 브루스 프레드릭(Bruce Friedrich) 굿푸드인스티튜트(Good Food Institute·GFI) 회장은 “배양육 분야는 생명공학 기술과 식품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며 “한국은 삼성과 셀트리온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기업과 대상과 같은 식품 대기업, 그리고 과학의 가치를 이해하는 정부도 있어 잠재력이 아주 큰 나라”라고 말했다.
배양육은 가축의 줄기세포를 세포배양액에서 키워 만드는 인공 고기다. 가축을 도살하지 않고도 살아있는 생물에서 유전자 변형 없이 세포를 늘리는 생명공학적 기술을 이용한다. 최근 기후 위기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배양육 산업이 커지고 있다. 2020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미국, 이스라엘도 연이은 배양육 제품을 승인했다.
프레드릭 회장이 2016년 설립한 GFI는 글로벌 배양육 연구의 대표적인 국제민간단체다.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싱크탱크로, 각국의 과학자·기업·정부와 협력해 대체단백질을 개발하고 있다. 기후 문제 해결, 생물 다양성 확보, 식량 자급률 향상, 세계 보건 증진 등을 목표로 국제 사회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본부는 미국 워싱턴이며, 싱가포르(아시아 태평양)·브라질·벨기에(유럽)·인도·이스라엘·일본 등 6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내년 상반기 안에 한국 지부도 설립할 예정이다.
프레드릭 회장은 “전반적인 배양육 산업을 보면 바이오 업계는 아직 식품 업계보다 참여도가 낮은 상황”이라며 “식물성 지방·단백질이 동물성 지방·단백질처럼 작동하도록 개발하는 것은 생명과학의 도전인 만큼, 바이오 기술이 많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배양육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세포배양액 대량 생산이다. 소나 닭, 돼지 등 기존 가축에서 분리한 세포를 키워 배양육을 만드는 방식은 고비용 저생산으로, 고기를 대체할 세포를 빠르게 많이 만들 배양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에 전 세계 바이오 업계도 배양육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으며 뛰어드는 추세다.
국내에는 대상(001680), CJ제일제당(097950)과 같은 식품 대기업은 물론 배양배지와 세포주, 성장인자를 개발하는 한화솔루션(009830), 엑셀세라퓨틱스(373110), 비욘드셀, 바이오앱, 케이셀바이오사이언스와 제조공정 개발기업인 마이크로디지탈(305090), 써모피셔 사이언티픽 코리아 등 바이오 업체들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셀트리온(068270) 등은 바이오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세계 최대 규모의 배양시설을 갖추고 있다. GFI가 국내를 배양육 산업의 미래 리더로 주목하는 이유다.
이날 프레드릭 회장은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미래식품산업협회의회(BFFIC)와 업무협약(MOU) 체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3개 기관은 이번 MOU로 배양육 시장 조사·기술 지식 교류, 신소재 식품 규제 체계에 대한 정책 제안, 기술 혁신을 위한 공동 웨비나·워크숍 개최 등 다양한 협력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BFFIC는 한국바이오협회가 지난 7월 바이오 미래식품 지원을 위해 창립한 단체다. 대상, 한화솔루션을 필두로 관련 스타트업과 바이오 기업 등이 참여했다. 배양육 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식품 기업인 대상은 지난 2021년부터 관련 기술에 투자하며 확장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배양육에 사용되는 성장인자를 2026년까지 개발하고 오는 2030년 본격적으로 사업화에 나선다는 중장기 계획을 내놨다. 배양육 성장인자는 배양육 생산 속도를 높여주는 핵심 기술로, 세포의 성장·분화를 촉진하고 세포의 대사산물을 분해해 세포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BFFIC 초대 협회장은 정일두 심플플래닛이 맡았다. 심플플래닛은 국내 유일 세포주 13종을 확보하고 있으며 다양한 세포주를 생성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프레드릭 회장은 “한국은 전 세계 2위의 바이오 허브이자, 세계 여러 국가 가운데 바이오 연구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는 나라로 꼽힌다”며 “글로벌 배양육 산업에서 한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국 기관들과 협력하며 GFI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뿐 아니라 한국의 규제 시스템도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2월 배양육을 비롯한 바이오 미래식품 인허가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싱가포르·미국·이스라엘에 이어 국내에도 배양육 시판을 허가하기 위해서다. 4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경상북도를 ‘세포배양식품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
프레드릭 회장은 “한국 정부는 기후위기, 식량 안보 등 글로벌 난제 해결을 위한 과학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특히 지난 20년간 한국의 육류 소비량이 두 배로 증가한 만큼, 배양육 산업을 키워 지속 가능한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드릭 회장은 미국 그린넬 칼리지에서 농업을 전공한 뒤 존스홉킨스대 교육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조지타운대 로스쿨에서 법무박사(J.D.)를 마쳤다. GFI 설립 전에는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의 부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