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기업들이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기반 치료제 개발에 잇따라 도전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장 질환, 암, 신경계 질환, 대사질환 등으로 치료제 개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마이크바이옴은 미생물을 뜻하는 마이크로브(microbe)와 생태계를 뜻하는 바이옴(biome)의 합성어로, 우리 몸속에 사는 미생물 집단을 뜻한다. 사람 몸에는 수십조개 이상 미생물이 있다. 그중 80% 이상이 위·대장·소장 같은 장 속에 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쎌바이오텍(049960), 지놈앤컴퍼니(314130), 고바이오랩(348150), CJ바이오사이언스, 이뮤노바이옴, 리비옴 등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셀트리온(068270), 일동제약(249420), 종근당바이오(063160) 등도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연구개발 투자와 물질 특허를 강화하고 있다.
쎌바이오텍은 마이크로바이옴 대장암 신약 후보 물질 ‘PP-P8′의 임상시험 1상을 다음 달 개시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유산균 브랜드 ‘듀오락’으로 알려진 국내 수출 1위 프로바이오틱스 전문기업이다. 건강기능식품 사업으로 확보한 자금을 신약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PP-P8′이다.
PP-P8은 한국인의 대장에 서식하는 김치유산균을 활용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먹는 치료제다. 한국인 유산균에서 발현한 항암 단백질 ‘P8′의 대장암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유전자를 조작해 김치 유산균(PP)과 결합했다. P8은 쎌바이오텍 특허 균주인 ‘CBT-LR5′ 유래 항암 단백질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접목해 항암 단백질 P8을 자연 상태보다 100배 넘게 많이 생산할 수 있다.
회사는 앞서 지난 7월 대장 암세포 내로 침투한 항암 단백질 P8이 대장암 증식에 관여하는 단백질 GSK3β에 결합하고, 성장 촉진 단백질을 파괴해 대장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항암 작용 원리를 규명했다. 회사는 P8이 대장 암세포뿐 아니라 세포의 핵 속에도 침투해 GSK3β DNA에 직접 결합해 PP-P8이 장내 미생물 불균형을 바로잡는 효과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SCI급 국제 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에 실렸다.
지놈앤컴퍼니는 건강한 사람의 장에서 분리한 ‘락토코커스 락티스’ 균주를 주성분으로 하는 먹는 형태의 항암제 후보물질 GEN-001을 개발 중이다. 현재 위암과 담도암을 적응증으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 머크와 화이자가 공동 개발한 면역항암제 ‘바벤시오’와의 병용 가능성을 인정받아 공동 임상 중이다.
암 환자의 장내 세균 조성이 나쁘면 기존 항암제가 치료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질 좋은 균주를 투입해 몸속 면역 시스템을 새롭게 자극하면 같이 투여되는 면역 항암제 기능을 크게 올릴 수 있다는 게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항암제 개발 회사들의 시각이다.
메디톡스 관계사인 리비옴은 지난 18일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마이크로바이옴 염증성 장 질환 치료 신약 물질 ‘LIV001′의 유럽 임상 1b상 승인을 받았다. 이 회사는 LIV001을 먹는 형태의 생균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적용해 면역 조절 효능이 있는 단백질 유전자를 발현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원리다.
기업들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에 잇따라 뛰어든 데는 최근 각종 연구를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이 항암 치료 효과를 높이거나,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부터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우울증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면역학과 신경과학을 융합해 마이크로바이옴이 뇌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연구해 온 허준렬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이 난치성 질환과 기존 치료제의 치료 한계를 넘을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봉현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개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해 염증성 장 질환에서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잠재적 응용 분야에서 치료 혁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시장이 초기 단계라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다. 지금까지 상용화에 성공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 신약은 스위스 페링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레비요타와 미국 세레스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보우스트 2개에 그친다. 두 치료제 모두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 치료제다.
이에 규모가 큰 대기업들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 R&D에 투자하며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2월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회사 리스큐어바이오사이언시스와 마이크로바이옴 파킨슨병 치료제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맺고, 경구형 파킨슨병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생균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회사는 향후 파킨슨병 신약 개발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영역을 확장하고,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종근당바이오는 2022년 연세대학교 의료원과 함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제 연구개발에 나섰다. 최근에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생균 치료제 생산을 위한 시설을 확장하며, 마이크로바이옴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알츠하이머 치매 등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파이프라인을 강화할 예정이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 규모가 2027년까지 연평균 54.8% 성장률을 보이며, 14억6530만 달러(약 2조원) 가치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