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나 연구기관이 의약품 개발을 위해 환자 대상의 임상시험을 진행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시험계획(IND) 서류를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 기간은 통상 근무일 기준 30일이지만, 보완이나 수정 요청에 따라 최소 3개월 이상 걸린다. 보완 사항이 많을수록 임상시험 진입이 늦어져 결국 의약품이 필요한 환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식약처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의약품 임상 진입을 앞당기기 위해 IND 서류 준비에 참고할 수 있는 주요 보완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업체들의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환자들에게 신속하게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국산 의약품의 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식약처 소속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지난 20일 의약품 개발사를 대상으로 한 ‘2024 하반기 의약품 심사 설명회’를 열고 최근 5년간 의약품 IND 보완 사례를 소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바이오의약품과 의약외품의 품목허가 심사를 담당한다.
이날 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IND 승인 건수는 783건으로 전년 대비 10%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제약사(41%)보다 다국적 제약사(59%)의 비중이 더 높았고, 임상시험 단계는 초기 단계인 1상(51%)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질환별로는 항암제(38%), 내분비계(10%), 심혈관계(10%), 중추신경계(8%) 순으로 많았다.
평가원은 지난 2019년 4월 의약품 IND 보완사례집을 처음 만들어 공개했다. 이후 5년간 최신 자료를 모아 지난 9월 개정집을 냈다. 최신 사례를 통해 의약품 개발 업체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였다.
박소라 종양항생약품과 연구관은 “임상시험 승인 과정에서 안전성과 신속성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안전한 임상시험 진행을 위한 식약처의 노력과 업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집은 첫 사례집에 담겼던 37례보다 늘어난 56례를 담았다. 임상시험 설계와 투약 방법에 대한 사례가 크게 보강됐다. 특히 안전성에 대한 자료 보완 사례가 주를 이뤘다. 승인된 IND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항암제는 자료가 불충분하거나 세부 기준이 불명확해 보완 요청을 받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항체-약물접합체(ADC) 기반 고형암 치료제의 임상 1상 시험 IND의 경우, 독성시험의 일부인 조직 교차반응성에 대한 시험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미흡하다는 이유로 보완 요청을 받았다. ADC는 암세포와 결합하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차세대 항암 기술로 최근 업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다른 항암제의 임상 1상 IND에서는 특정 단백질의 발현 수준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아, 기준보다 발현 수준이 낮은 환자도 시험에 포함돼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해당 제약사는 발현 수준에 따른 시험 대상자의 적합성을 보완하는 절차를 거쳐 최종 승인받았다.
안전성만큼 중요한 약의 효능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 기준·기간·방법 등 명확한 설정이 중요하다. 평가원은 특히 유효성 평가 시점에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기재할 것을 강조했다.
고혈압 치료제의 경우 유효성 평가에서 혈압을 측정하는데, 이 시점에 고혈압 치료제 투여 여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평가원은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하기 전에 혈압을 측정하도록 명확하게 기재하라고 요청했다.
박 연구관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업계가 신속하게 시험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 목표”라며 “평가원은 앞으로 최신 사례를 지속적으로 추가해 활용도를 높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