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렬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몬트리올 임상연구소

인간과 공생하는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이 비만과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질환뿐 아니라 암이나 뇌 질환과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근까지 마이크로바이옴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부터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우울증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성과를 빠르게 치료제 개발로 발전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셀트리온(068270), 종근당바이오(063160), 일동제약(249420), CJ바이오사이언스 등이 속속 뛰어들며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는 추세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은 2027년 말까지 연평균 성장률 54.8%를 보이며 총 14억6530만달러(약 2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허준렬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에서 선도적인 연구자로 꼽힌다. 허 교수는 신경계와 면역계를 연결 짓는 신경면역학 분야의 세계적인 의사과학자다. 면역계가 뇌 질환에 미치는 영향, 특히 마이크로바이옴이 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밝히는 데 집중했다. 허 교수의 연구 성과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우울증,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난치성 신경질환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허 교수는 2017년 부인인 글로리아 최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와 함께 발표한 연구로 주목받았다. 두 사람은 임신한 쥐의 마이크로바이옴에서 나오는 특정 면역 물질이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자폐증이 유발된다는 것을 밝혔다. 당시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일반적으로 심각한 미생물 감염을 겪은 임신부가 자폐증을 앓는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다. 덴마크에서는 산모가 임신 3개월 안에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폐아 출산 위험이 3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임신 중 감염과 태아 자폐증 사이의 연관관계는 물음표로 남아있었는데, 두 연구자가 비밀을 밝힌 것이다.

연구 결과, 자폐증과 관련된 면역 신호물질로 ‘인터루킨(IL)-17′이 지목됐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한 쥐의 마이크로바이옴에서 나온 IL-17이 태아의 특정 뇌 부위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태어난 쥐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자폐 증상을 보였다. 반대로 항생제로 특정 장내 세균을 없애자 임신 중에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정상 새끼를 낳았다.

글로리아 최 교수가 지난해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년 한국뇌신경과학회 정기국제학술대회’ 특별강연에서 발표하고 있다./한국뇌신경과학회

허 교수와 글로리아 최 교수는 자폐증과 마이크로바이옴 사이의 연관 관계를 계속 살피고 있다. 글로리아 최 교수는 지난해 조선비즈에 “남편과 함께 자폐아를 출산한 여성과 다른 여성의 장내 세균이 어떻게 다른지 추적하고 있다”며 “유익한 장내 세균이 무엇인지 알면 몸에 좋은 세균인 프로바이오틱스로 자폐아 출산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 허 교수는 면역 신호물질 IL-17을 만드는 Th17 세포도 연구한다. Th17 세포는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면역세포로, 염증성 장 질환에서 다발성 경화증까지 염증성 질환, 자가면역질환과 연관돼 있다. 허 교수 연구진은 Th17 세포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를 찾았고, 이를 이용한 새로운 치료 전략을 찾고 있다.

허 교수는 학문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로 진출해 신약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2020년에 글로리아 최 교수와 미국 보스턴에 바이오 기업 인테론(Interon Laboratories)을 설립했다. 신경생물학과 면역학 분야의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과제)을 통해 자폐증과 염증·자가면역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허 교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지난 6월 인테론과 국내 에스티팜(237690)은 종양괴사 인자 수용체(TNFR)를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저분자 전임상 후보물질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 교수 부부는 지난 6월부터 유제품 회사인 hy의 외부 연구자문위원을 맡아 프로바이오틱스 연구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공동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앞서 2022년에는 CJ바이오사이언스와 함께 염증성 장 질환,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 루게릭병), 알츠하이머병을 대상으로 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 개발에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허준렬 교수는 오는 21일 서울 중구 웨스턴 조선호텔에서 열리는 제12회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HIF)’에 기조 강연자로 나선다. HIF는 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전문매체 조선비즈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동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행사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신경과학의 혁신과 헬스케어의 미래’다. 허 교수는 이날 뇌 질환 진단과 치료에서 새로운 열쇠로 부각한 신경면역학을 소개한다.

참고 자료

Nature(2017), DOI: https://doi.org/10.1038/nature23909

Nature(2017), DOI: https://doi.org/10.1038/nature23910

◎2024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 행사 개요

△행사명: 2024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일시: 11월 21일 09:00~17:00

△장소: 서울 웨스틴 조선 그랜드볼룸

△주제: 신경과학의 혁신과 헬스케어의 미래

△주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선비즈

△등록·참가비: https://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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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