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이중나선에서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는 이미지./조선일보DB

미국 화이자,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일본 다케다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최근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사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CGT는 유전자를 직접 교정해 단 한 번의 주사로 병을 근본 치료하는 ‘꿈의 치료제’로 주목받았지만, 회사들은 개발 비용이 많이 들고 약값이 비싸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밝힌 약가인하 정책 기조가 이들의 사업 방향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제약전문매체인 피어스파마는 18일(현지 시각) CGT 사업에 어려움을 겪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최근 전략적으로 사업 중단 또는 매각 수순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화이자는 지난해 진행 중이던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을 중단한 데 이어, 최근 듀센 근이영양증 유전자치료제로 개발하던 약물이 임상시험에서 실패하자 연구 인력을 대규모 감축했다. 듀센 근이영양증은 팔이나 다리, 몸통 등 근육이 퇴행해 결국 사망에 이르는 희소 질환이다.

일본 다케다도 지난해 아데노바이러스를 유전자 전달체로 삼는 유전자치료제 연구를 종료했고, GSK도 지난해 CGT 연구개발(R&D) 투자를 중단했다.

세포·유전자치료제는 환자 특성에 맞게 세포를 변형·배양한 뒤 인체에 투여하거나 질병을 일으킨 유전자 결함을 교정해 병을 고치는 원리로,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차세대 유망 기술로 꼽혔다. 최근 5년 사이에 20개가 넘는 유전자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을 정도로 각광받는 치료 영역이다. 한국에서 킴리아(B세포 림프종 치료제), 헴제닉스(B형 혈우병 치료제) 등 유전자치료제 5종이 모두 최근 4년 안에 허가가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개발부터 제조까지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초고가 약으로 환자들이 쓰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관련 업체의 한 관계자는 “CGT는 개발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초고가여서 대량 생산을 할 수가 없다”며 “분명 획기적인 치료법이지만 수익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 CSL베어링이 개발한 B형 혈우병 치료제 '헴제닉스'./CSL베어링

2022년 미국에서 승인받은 헴제닉스는 한 번 투여에 무려 350만달러(48억7400만원) 들어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으로 알려졌다. 헴제닉스 개발사인 미국 CSL베어링도 더 이상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CSL베어링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회사의 개발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과제)에서 유전자치료제의 우선순위를 낮추고 재검토할 예정”이라며 “가장 유망한 분야인 메신저리보핵산(mRNA)에 자원을 집중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약가 인하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예고되자 제약사들이 보다 경쟁력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려는 것으로 분석한다.

한 글로벌 제약사 한국 법인 관계자는 “트럼프의 약가 인하 예고에 보건부 장관까지 고가 의약품에 대한 불신이 있는 인물로 내정한 만큼, 지금 글로벌 제약업계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라며 “안 그래도 유전자치료제의 수익성이 다른 모달리티(약물전달기술)보다 낮은데, 앞으로 승인은 물론 시판 이후에도 어려움이 예상되는 사업 분야에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