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알츠하이머 연구치료 센터에서 알츠하이머병 검사를 위해 진행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뇌영상. /로이터

기억을 잃어버리는 치매는 ‘암보다 두려운 질병’이라 불린다. 발병 원인이 다 밝혀지지 않아 획기적인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도 크다. 최근 치매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희망을 안겼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지난해 승인받은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올해 7월 승인된 미국 일라이 릴리의 ‘키썬라(도나네맙)’다.

그렇다면 알츠하이머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한계가 분명하다. 이번에 승인받은 신약들은 모두 알츠하이머병 초기 환자만 치료 대상이다. 게다가 부작용도 있다. 초기 치매 환자를 찾아낼 진단 방법도 뾰족하게 없다.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와 과학계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조기 진단하고 부작용 없이 치료할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단서 찾는 학계

알츠하이머병은 전 세계 치매 환자 5500만명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그동안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환자의 인지 저하 증상을 완화해주는 용도로 처방됐다. 그러다 의학계가 오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원인을 제시하면서, 기업들이 이를 표적으로 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현재까지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Aβ)와 타우가 뇌 속에 쌓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타우 역시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세포 내부에 쌓이면서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알츠하이머병 치료 신약 레켐비와 키썬라는 모두 뇌에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원리다. 그러나 이 치료제를 쓸 때 부작용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대표적인 부작용이 뇌부종과 뇌출혈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뇌혈관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오히려 뇌혈관을 느슨하게 만들어 뇌부종과 이에 따른 뇌출혈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것이다. 치료 원리와 부작용 등의 이유로 약물을 쓸 수 있는 환자도 제한적이다.

국내 기업들은 기존 신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타우 단백질을 겨냥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의 윤승용 교수가 지난 2016년 창업한 회사 아델이 대표적이다. 회사는 현재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 후보물질 ADEL-Y01로 임상 1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ADEL-Y01은 정상 타우에는 작용하지 않고 변형된 아세틸화 타우(tau-acK280)만 겨냥해 작용하는 세계 첫 항체 후보물질이다. 회사는 후속 신약 후보물질인 APOE4 항체(ADEL-Y04)의 전임상 연구개발도 진행할 예정이다. 타우 외에도 여러 곳을 공략하는 신약 후보물질과 표적단백질분해 플랫폼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스타트업인 뉴로핏은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를 겨냥한 치료제의 부작용을 AI를 통해 추적·분석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쓰면서 자칫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빨리 감지하는 용도다.

뉴로핏이 최근 출시한 뉴로핏 아쿠아 AD라는 소프트웨어는 뇌의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영상을 분석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사용의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투약 전에는 처방 적합성을 판단하고, 투약 중에는 뇌출혈, 뇌부종과 같은 부작용의 발생 여부와 중증도 등을 판단한다.

◇치매 신약 시대 열렸다…한계 넘기 위한 도전

세계적인 치매 석학인 케이 조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뇌과학과 교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에는 아밀로이드 베타, 타우 단백질과 생활 습관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보고, 치매의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현재 영국과 일본의 제약사들과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지 않아도 치매를 유발하지 않는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케이 조 교수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가 나쁜 단백질이어도 우리 뇌에 필요하다”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줄이는 방식으로 전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치매 연구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케이 조 교수는 연구기관 10곳과 인터넷에 가상연구소를 구축해 서로 실험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다. 치매로 사망한 환자들이 기증한 뇌로 연구할 수 있는 뇌은행,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기술 기반의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정보 수집 및 분석) 등도 활용하고 있다. 뇌 은행은 환자들의 임상 정보는 물론 뇌조직 세포를 보유하고 있어 연구개발에 큰 도움을 준다. 조 교수는 “100명이 10년에 걸쳐 실험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가 AI를 통해 단 6개월 만에 나왔다”고 말했다.

치매는 고령화 추세로 환자가 늘고 있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예방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성 치매는 전체 발병 건수의 1%에 그친다. 고지혈증과 당뇨, 고혈압 등 다른 질환도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등 환경 요인도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핀란드가 주도하는 국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인 세계 핑거 프로그램은 여기에서 착안해 치매 예방을 위한 5가지 활동을 제시했다. 유산소 운동, 독서, 등 푸른 생선과 신선한 채소·견과류, 사회적 교류, 기타 위험인자 등을 관리하고 경과를 관찰하는 것이다. 10년 넘게 핑거 프로그램의 생활을 실천한 수만명을 관찰한 결과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이 확실히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묵인희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세계 핑거 프로그램과 유사한 한국 실정에 맞는 핑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묵 단장은 “치매 발병을 5년 늦춰서 전체 치매 환자의 증가폭을 5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치매 극복은 치매 발병을 늦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묵 단장은 서울대 치매융합연구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20년부터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오는 2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조선비즈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최로 열리는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HIF 2024)’에서는 케이 조(Kei Cho)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뇌과학과 교수, 서울대 의대 교수인 묵인희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 서울아산병원 뇌과학교실 교수인 윤승용 아델 대표, 빈준길 뉴로핏 대표를 통해 일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 정복을 위한 도전 과제와 치료법 혁신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정보를 들을 수 있다.

◎2024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 행사 개요

△행사명: 2024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일시: 11월 21일 09:00~17:00

△장소: 서울 웨스틴 조선 그랜드볼룸

△주제: 신경과학의 혁신과 헬스케어의 미래

△주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선비즈

△등록·참가비: https://e.chosunbiz.com

△이메일: event@chosunbiz.com

조선비즈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