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185750)이 연구개발(R&D)에 약 10년을 투자한 신약 후보로 미국 임상시험에 돌입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하다가 잇따라 실패한 원리여서 성공하면 세계 최초 신약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영업력으로만 알려진 회사가 세계에서 신약 개발사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종근당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이상지질혈증 신약 후보물질인 CKD-508의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고 4일 밝혔다. 회사는 이번 미국 임상 1상 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지질 개선 효과를 확인한 뒤 환자 대상 임상 2상을 위한 최적 용량을 찾는다는 계획이다. 앞서 2020년 6월 영국에서 시작한 임상 1상은 현재 투약을 마치고 결과를 분석 중이다.
이상지질혈증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비정상적일 때 발생한다. 혈관에 몸에 나쁜 저밀도 콜레스테롤(LDL)과 중성지방이 많거나 유익한 고밀도 콜레스테롤(HDL)이 떨어진 상태인데, 심장이나 뇌로 가는 혈관을 막아 심뇌혈관질환을 일으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219만명 수준이던 국내 이상지질혈증 환자 수는 지난해 304만명을 훌쩍 넘었다.
CKD-508의 글로벌 임상시험이 본격화되면서 종근당의 R&D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줄줄이 개발을 포기한 ‘콜레스테롤 전이 단백질(CETP) 저해제’ 치료후보물질이기 때문이다. 종근당이 개발에 성공할 경우 이 계열에서 세계 최초 신약이 될 수 있다.
CETP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고밀도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단백질이다. CETP를 억제하면 반대로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이 강화되고 나쁜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억제된다. 앞서 머크(MSD), 화이자, 일라이 릴리, 암젠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CETP 억제제를 차세대 치료제로 개발하려 했으나, 개발 과정에서 유효성이 떨어지거나 이상 반응이 나타나 실패했다. 현재 CETP 억제제 계열 이상지질혈증 치료 신약을 개발 중인 곳은 종근당과 네덜란드의 뉴암스테르담 파마 정도로 알려졌다.
현재 대표적인 이상지질혈증 치료제는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스타틴 계열 약물이다. 하지만 부작용 우려가 있다. 근육 통증, 횡문근융해증 등이 가장 흔한 부작용으로 보고됐다. 특히 스타틴 제제 약물을 복용하면 당뇨병이 발생할 확률도 약 9%로 나타났다.
이에 FDA는 지난 2012년 모든 스타틴 제제 제품 라벨에 혈당과 당화혈색소 수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경고 문구를 추가했다. 이런 이유로 전체 환자의 약 30%는 스타틴 계열 치료제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스타틴 계열 약을 복용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스타틴의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할 해결사로 주목 받고 있는 게 CETP 저해제다. 당뇨 발병률 또한 약 16%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는 이처럼 CETP를 억제하는 원리의 치료제라면 스타틴에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약효가 없는 30%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박현아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스타틴은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데, 스타틴 약물이 듣지 않거나 부작용이 심한 환자는 CETP 저해제를 써서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낮추고, 고밀도는 높여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근당은 세계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시장 규모가 연 매출 기준 현재 약 11조원에서 오는 2030년 약 27조5000억원 규모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곽영신 종근당 효종연구소장은 “비임상에서 이상지질혈증의 주요 지표(아포단백질 수치)가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며 “개발 난도가 높다고 알려진 CETP 억제제 기전의 CKD-508 개발을 성공해, 세계 최초 신약으로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