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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 시각) 자정부터 47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 투표가 시작됐다. 이번 선거 결과에 한국 제약·바이오업계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의약품 시장이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에 따라 한국의 수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헬스케어 관련 공약과 정책 기조는 ‘의료비 지출 절감’이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선 기회와 위기 요소가 상존한 상황이다. 수출한 한국 약품의 가격이 하락할 수 있는 반면, 한국 복제약 매출은 늘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해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향방이 갈릴 수 있다. 2022년 제정된 이 법안은 의약품과 에너지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두 후보 중 누가 돼도 자국 산업과 경제를 우선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수 있어 한국 기업들의 빠른 대응과 경쟁력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민주당 후보가 10월 26일 미국 미시간주 포티지에서 의료진과 의과대학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AP

◇“의약품 가격 경쟁력 압력 커져”

해리스 후보가 당선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25년 동안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50% 이상 낮추겠다며 시작한 캔서 문샷(Cancer Moonshot)과 의약품·에너지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둔 법인 IRA 같은 기존 헬스케어 정책 기조를 유지하거나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제정한 IRA에 따라 공공의료보험기관(CMS)과 제약사 간 협상으로 약가 인하를 추진했다. 작년에 존슨앤드존슨(J&J)의 자렐토(항응고제)와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의 엘리퀴스(항응고제), MSD의 자누비아(당뇨병 치료제) 등 10가지 약품을 약가 인하 대상으로 선정했다. 가격 인하율은 53%~79% 수준으로, 2026년 10개 품목의 가격 인하를 시작으로 2029년부터는 40개 의약품으로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트럼프 후보 역시 약가 인하를 주요 공약으로 언급해왔다. 다만,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바이든 정부의 IRA에 따른 약가 인하 정책은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후보는 약가 인하 대상 의약품을 특정해서 협상하는 직접적인 방식을 폐지하고, 복제약을 통한 가격 경쟁으로 간접적인 약가 인하를 촉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후보가 집권하면, 바이든 정부의 기존 헬스케어 정책을 축소하거나 재편, 철회할 것이란 관측이 잇따른다.

◇“바이오시밀러 시장 커질 기회”

한국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은 성장 기회와 부담 요소가 상존한다. 우선, 두 후보 모두 의료비 지출 감소에 초점을 두고 있어, 앞으로 미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약과 치료 효능은 동등한 수준인데 가격은 더 저렴해, 국가의 의료비 재정 부담을 낮추고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넓히는 데 유리하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낸 ‘미국 대선 시나리오별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향’ 보고서를 통해 “해리스 후보 집권 시 바이오시밀러 중심의 대미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또 “트럼프 후보도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의 사용 촉진에 우호적인 입장이라, 한국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수요가 최소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픽=정서희

시장은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하는 셀트리온(068270),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제네릭에 강한 한국 제약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과 실적 확대 등 성장 기회가 커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셀트리온은 2019년,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22년 미국에 첫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출시했다. 두 회사는 스위스 산도스, 미국 암젠, 마일란 등과 함께 미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일찍이 진출한 선두 그룹에 속한다. 더구나 작년부터 여러 블록버스터급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면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커지고 있다.

반면, IRA에 따른 오리지널 약의 가격 인하 압력이 커지면 바이오시밀러 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오리지널 약값이 높아야 바이오시밀러의 경쟁력이 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약가 인하 정책 방향에 따른 유불리가 엇갈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현지 시장 마케팅과 협상력 강화가 중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바이오베터(개량신약) 특허·신약 개발 기술 확보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쟁 심화,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응해야

미국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도 한국 기업이 대응해야 할 변수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든 기업들이 늘면서 경쟁 압력이 커질 수 있고, 바이오시밀러의 현지 시장 가격에 대한 정부 개입 가능성도 열려 있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미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커지면서, 이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늘어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며 “한국 기업들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 바이오시밀러 시장에는 인도‧유럽‧일본 기업들도 다수 뛰어들었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집권 시 국내 필수의약품 공급망 구축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통상 정책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정부 1기 시절, 미국산 원부자재의 국외 유출을 저지하는 자국 우선주의를 펼쳤기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는 “의약품을 포함한 필수 상품의 중국산 수입 중단을 목표로 하는 4년 계획도 도입하겠다”고 표명한 바 있다.

9월 23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공화당 대선 후보(왼쪽)가 펜실베니아 주민들에게 미국 농업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우려하는 내용을 연설하고 있다. /Getty Images via AFP

중국 기업을 저지하는 게 핵심인 ‘생물보안법’이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중국 기업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바이오 의약품 위탁 개발·생산(CDMO) 업체인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은 2032년 전에 미국에서 사실상 퇴출된다. 우시를 통해 약을 생산하던 기업들은 다른 CDMO 기업을 찾아야 하는데, 중국 업체의 경쟁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의약품 연구개발(R&D) 환경에 관한 전망도 다소 상충된다. 산업연구원은 해리스 후보 집권 시 바이든 정부의 캔서문샷 같은 정부 주도의 대형 프로젝트를 지속하면서 R&D 투자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해리스 정부가 유럽연합(EU), 인도, 일본, 한국 등 우호국을 중심의 제약·바이오 연합을 결성해 공급망을 강화하거나 생명공학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약가 인하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수익성 악화를 방어하고자 R&D 투자를 줄일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 이전이 위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