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의 만성 이식편대숙주병 치료제 레주록. 혈액암 환자가 골수 이식 수술 후 겪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치료하는 신약이다./사노피

혈액암 환자들은 치료가 어려워 신약 허가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국내에서 신약이 허가돼도 환자들은 여전히 비싼 약값에 고통 받는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려 환자가 약값을 모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와 의료계에서 급여 심사가 빨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환자들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한 이 같은 급여 심사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국회와 의료 현장에서 잇따라 제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 8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혈액암 치료에 대한 인식과 환자들을 위한 지원 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암병원을 3군데나 보유한 K의료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약가 참조국 다수가 급여로 지원 중인 약제를 국내에서만 장기간 비급여로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2024년 최근 3년간 심평원 심의원회에 상정된 혈액암 치료제는 총 13개인데, 이 가운데 최초 심의에서 급여 기준이 설정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했다. 85%에 해당하는 11개가 첫 심의에서 탈락한 것이다. 나머지 6개는 현재까지도 건강보험 비급여 상태여서 환자들의 비용 부담이 큰 상황이다.

반면 한국의 약가참조국인 미국과 영국은 10개, 일본은 9개의 혈액암 치료제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한국은 약제 건강보험 급여 평가를 위해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캐나다 등 8국의 약가를 참조한다.

국내에서 실제 보험급여가 이뤄지기까지는 최대 1년이 걸린다. 새로운 항암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품목허가를 받으면, 제약사가 심평원에 보험급여를 신청한다. 그러면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가 보험급여 기준을 설정해 최종적으로 보건복지부가 급여를 정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약가를 결정하는 심평원 심의위원회 위원이 위암, 대장암 등의 고형암 계열 위주로 구성돼 있어, 합리적인 급여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혈액암 전문가들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혈액학회 관계자는 “올 2월 개편된 이후에도 42명의 전체 위원 중 혈액암 전문의는 6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혈액암 합병증을 앓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영 의원은 “혈액암 환자들이 자매·형제 또는 부모 등 다른 사람의 골수를 이식받은 뒤 겪게 되는 희소 합병증에 대한 신약 접근성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골수 이식 수술은 백혈병을 비롯한 혈액암 환자의 유일한 치료법이다. 그러나 이식을 받은 환자의 절반 이상은 발열, 발진, 간 기능 이상 등 전신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겪는다. 치료제가 있긴 하지만 효과가 미미해 환자들이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의 ‘레주록’이 지난 8월 국내에서 허가를 받아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희제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장은 24일 사노피 한국법인의 레주록 허가 간담회에서 “암 재발을 제외한 혈액암 환자의 사망 원인 가운데 38%가 골수 이식 수술 후 발생한 치명적인 합병증”며 “보험급여를 비롯한 절차가 빠르게 진행돼 환자들이 하루빨리 치료 효과를 보길 바란다”고 했다.

사노피 한국법인은 이르면 다음 달 중순부터 레주록을 정식 유통할 예정이다. 그러나 약 가격이 월 2000만원이 넘는 만큼 환자들의 부담이 큰 상황이다. 사노피 한국법인 관계자는 “환자들이 하루하도 빨리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연내 급여 신청을 서두르고, 관련 기관에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