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예쁜 반려견 선발대회에 참가한 반려견이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뉴스1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에 이르면서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반려동물을 위한 신약 개발 경쟁에 나섰다. 이전처럼 항생제나 구충제 정도가 아니라 비타민, 소화제 같은 일반 의약품은 물론 당뇨병 치료제와 면역항암제 같이 전문 의약품까지 발전하고 있다.

2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069620) 계열사 대웅펫은 당뇨병 치료제인 엔블로(성분명 이나보글리플로진)를 동물용으로 만든 ‘엔블로펫’에 대한 마지막 임상 3상 시험을 연내 마무리할 예정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엔블로펫은 현재 임상 3상 진행 중으로, 올해 안으로 품목허가 신청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이 개발한 엔블로는 국산 신약 36호로, 지난해 5월 국내 출시한 나트륨-포도당 공동수송체(SGLT)2 억제제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이다. 신장이 다시 흡수하려는 포도당과 나트륨을 소변으로 배출시켜 혈당을 조절한다. 대웅펫은 최근 반려동물도 비만과 당뇨가 많아지는 추세에 따라 엔블로를 동물용으로도 출시하기로 했다.

대웅펫은 반려동물 전용 의약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지난 5월 간 기능 개선제 우루사의 주성분 우루소데옥시콜산을 동물용으로 만든 ‘UDCA정’을 출시했다. 반려동물용 영양제 ‘임팩타민펫’과 소화효소제 ‘베아제펫’도 판매 중이다. 동물용 치료제 개발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지난달에는 반려동물 전용 임상시험수탁(CRO)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발표했다.

대웅제약이 지난해 5월 출시한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 대웅펫은 엔블로를 내년쯤 반려동물용 '엔블로펫'으로 출시할 계획이다./대웅제약

반려동물 치료제 수요는 점점 늘 것으로 전망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인구 비율은 지난해 기준 28.2%이다. 지난해 인구가 5175만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반려동물 양육인구는 1460만명에 육박한다.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가 집계한 지난해 반려동물 건강관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2600억달러(약 360조원)로, 연평균 성장률은 6.45%이다.

동물용 의약품 개발의 이점은 인체 치료제 개발의 첫 단계가 동물시험이라는 것이다. 신약 개발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앞서 동물에게 효과와 독성, 부작용을 알아보는 전임상시험을 먼저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한 신약후보물질들은 동물에 대한 효능과 안전성이 어느 정도 보장됐다는 뜻이다.

동물용 의약품은 오랜 기간 인체용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들에겐 매출을 올리는 자구책이 될 수 있다. 전임상을 거친 신약후보물질을 동물용 의약품으로 먼저 출시하는 방법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 박셀바이오(323990)는 지난 8월 반려견 전용 면역항암제 ‘박스루킨-15′에 대한 농림축산검역본부 품목허가를 받고,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박스루킨은 자연살해(NK) 세포에서 분비돼 종양을 없애는 인터페론 감마를 늘리고, 암세포 성장을 유도하는 혈관내피성장인자(VEGF)는 줄이는 면역항암제다. 박셀바이오는 NK세포 기반 신약후보물질 ‘Vax-NK’로 사람의 간암을 치료하는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동물실험 성과가 인체 대상 항암제보다 먼저 상품화된 것이다.

박셀바이오는 반려견 유선종양 수술 후 면역보조제로 허가받은 박스루킨의 적응증을 혈액암인 림프종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또 고양이 전용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R&D)도 진행 중이다. 박셀바이오 관계자는 “반려견 면역항암제 박스루킨-15 출시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림프종으로 적응증을 확장하기 위한 임상시험은 끝났고, 조만간 허가 신청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미 나온 영양제와 치료제를 동물용으로 바꿔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은 고혈압 치료제 미카르디스(텔미사르탄)를 고양이 신장병 치료제로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유한양행(000100)이 판매 중인 반려견 인지기능장애증후군 치료제 제다큐어도 사람 대상 의약품에서 파생됐다. 동국제약(086450)도 인기 약품인 인사돌을 반려견 전용 ‘캐니돌정’으로 냈다.

최근에는 아예 인체용 의약품과 동물용 의약품을 동시에 개발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HLB(028300)HLB생명과학(067630)은 개발 중인 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툴베지오)을 동물용 항암제와 노인성 황반변성 치료제로도 개발하고 있다. HLB 관계자는 “동물용 리보세라닙 치료제 개발을 위해 현재 환견(犬)과 환묘(猫)를 모집하고 있다.

동물용 의약품 제도 개선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용 의약품 산업발전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동물용 의약품 허가를 담당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관련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동물용 의약품을 대상으로 신속 심사나 조건부 품목 허가를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