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먹는 세마글루타이드 '라이벨수스'./노보 노디스크

만병의 근원은 비만일까. 한국을 상륙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 세마글루타이드)가 심장질환을 고치는 약으로도 쓰일 것으로 관측된다. 먹는 형태로 만들어진 세마글루타이드를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으로 적응증을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21일(현지 시각) 비만 치료제 라이벨수스를 심혈관질환으로 적응증을 확대하기 위해 내년 초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에 허가를 신청한다고 밝혔다.

라이벨수스는 주사제인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같은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먹는 형태로 만든 약물이다. 라이벨수스는 2019년 FDA에서 최초로 먹는 당뇨 치료제로 승인을 받았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상반기 기준 라이벨수스 매출액 109덴마크 크로네(약 2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라이벨수스와 위고비는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를 기반으로 하는 비만 치료제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위나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사 후 포만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모방한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도 포만감을 높인다. 원래 같은 성분으로 당뇨 치료제 오젬픽을 개발했으나,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2형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서 심혈관 질환이나 만성 신장 질환을 가진 환자 9650명을 대상으로 라이벨수스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환자들이 원래 사용하던 치료제와 라이벨수스를 병용했다. 시험 결과, 라이벨수스 병용 환자는 가짜 약 복용 환자보다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14% 줄었다. 임상시험에서 측정한 심혈관 질환은 심혈관 관련 사망과 심근경색, 뇌졸중이 포함된다.

마틴 홀스트 랭(Martin Holst Lange) 노보 노디스크 부사장은 이번 임상시험 결과와 관련해 “2형 당뇨병이 있는 성인 3명 중 약 1명은 심혈관 질환도 앓고 있다”며 “세마글루타이드 같이 두 가지 질환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치료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노보 노디스크는 세마글루타이드를 심장질환 치료에 사용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8월에도 박출률 보존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위고비처럼 주사제로 된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결과, 심부전 악화 위험을 41% 낮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보존 심부전은 환자 80%가 과체중이나 비만일 정도로 비만과 밀접한 질환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내년 초 주사제 세마글루타이드에 대한 심부전 적응증 확대를 FDA에 신청할 계획이다.

비만 치료제가 다양한 질환에 치료 효과가 있는 점은 최근 과학·의학계에서도 눈길을 끌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도 지난달 25일 GLP-1 유사체 계열 비만치료제가 만병통치약과 같은 효과를 내는 이유에 대해 조명했다. 캐롤리나 스키비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GLP-1 유사체 비만약이 뇌와 말초신경계 모두에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체중 감량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다른 질환들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만 치료제가 일종의 종합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면, 관련 치료제를 개발한 제약사들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만 치료제를 개발했음에도 국내 제약사들이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동아에스티(170900)유한양행(000100), 한미약품(128940) 등이 비만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는 “비만 치료제 시장 자체가 크고, 또 다른 효능들도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개발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라며 “기존 제품들보다 개선된 효과와 편리한 복용이라는 장점이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