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약’이라 불리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당뇨병·비만치료제가 내시경이나 수술 중 위 마비, 장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REUTERS, Hannah Beier

‘꿈의 비만약’이라 불리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 계열 당뇨병·비만치료제가 내시경 검사나 수술 중 위나 장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이달 중순 국내에 GLP-1 계열 약인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출시되는 만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주 애들레이드대 연구진은 GLP-1 계열 비만약인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리라글루타이드), 위고비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티르제파타이드) 등을 투여한 환자를 대상으로 위장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 위 마비가 일어난 사례를 보고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랜싯 위장관내과학’ 10월호에 실렸다.

이들 약물은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GLP-1을 흉내 내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하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느끼고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를 낸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뇨병과 비만 치료를 위해 GLP-1 계열 치료제의 일종인 릴리의 트루리시티(둘라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는 내시경 검사를 하자 금식을 했음에도 음식물 역류와 폐 흡인이 일어났다. 위에 든 내용물이 소화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위 마비가 일어나 위가 미처 비워지지 않은 탓이다. 비만 치료를 위해 위고비를 투여한 환자 역시 내시경 검사 중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 6월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진도 ‘세계위장내시경저널’에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GLP-1 계열 약을 투여한 환자가 내시경 검사 또는 수술을 위해 마취를 했다가 위 잔류 음식물이 역류해 폐 흡인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위고비를 투여한 환자(24.2%)는 투여하지 않은 사람(5.1%)에 비해 위 잔류 음식물이 4배나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위고비 투여 환자는 금식 시간이 최대 14.5시간으로 권장 시간보다 훨씬 길었음에도 위 잔류 음식물이 남아 있었다.

연구진은 위 내시경 검사나 수술 등 마취가 필요한 환자는 최소 일주일 전부터 GLP-1 계열 약 투여를 멈춰야 하며, 긴급 수술을 해야 하는 응급환자는 배가 잔뜩 부른 상태로 간주해 위 역류, 폐 흡인을 막는 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국마취과학회도 GLP-1 계열 약을 투여하는 환자는 수술 일주일 전 투여를 멈춰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학회는 “일주일 전에 투여를 멈춘다 하더라도 일주일 뒤에 위 잔류 음식물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며 “GLP-1 계열 약을 투여하는 환자는 수술 전 위 초음파 검사 등으로 위 잔류 음식물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내 전문가들은 “약의 작용 원리 상 위에서 음식물이 배출되는 시간을 늦춰 오심, 구토, 복통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흔한 부작용은 아니므로 심각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서영균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삭센다와 위고비 등 GLP-1 약물은 위에서 음식물이 천천히 지나가는 효과로 식욕을 억제하는 원리”라며 “이런 효과 때문에 수술이나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아도 투여자의 절반이 오심이나 구토, 복통, 설사, 변비 같은 부작용을 겪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 교수는 “단순 위 배출 지연이기 때문에 약을 끊으면 이 효과가 떨어진다”며 “(영구적으로) 위 기능 자체가 떨어지는 장애가 아니므로 (심히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정환 한양대병원 내분비대사 교수도 “수술 전에 아스피린 같은 약을 끊는 것처럼 GLP-1 계열 약 역시 수술을 앞두고 중단하면 된다”며 “중단 후에 약물 효과가 장기간 유지되는 것이 아니므로 부작용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삭센다나 위고비 등을 투여하는 환자가 내시경 검사나 수술 전에 투여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침은 없다. 전문가들은 아직 부작용 사례가 충분히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소수 사례라도 마취 중 위 마비가 위 역류와 폐 흡인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참고 자료

Lancet Gastroenterol Hepatol(2024), DOI: https://doi.org/10.1016/S2468-1253(24)00188-2

World Journal of Gastrointestinal Endoscopy(2024), DOI: https://doi.org/10.4253/wjge.v16.i6.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