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일라이 릴리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12조원을 들여 생산 설비를 구축해 경쟁사인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보다 먼저 공급 리스크에서 벗어났다. 미 정부가 공급이 부족한 비만약에 한해 한시적으로 복제약을 허용했지만 이제는 릴리가 그런 문제에서 벗어나 시장 점유율을 크게 올릴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3일(현지 시각) 릴리의 당뇨 치료제 마운자로와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를 공급 부족 약물 목록에서 삭제했다고 밝혔다. 두 약물은 적응증과 제품명만 다를 뿐 모두 티르제파타이드 성분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제제이다. 마운자로는 2022년 12월 FDA 공급 부족 목록에 올랐고, 올 4월 젭바운드도 추가됐다. FDA 조치로 약 2년간 지속된 공급 부족 사태가 마침표를 찍었다.

릴리 경쟁사인 노보 노디스크 역시 2022년 8월부터 당뇨 치료제 오젬픽에 이어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공급 부족 목록에 올라와 있다. 오젬픽·위고비도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GLP-1 유사체 계열 치료제이다.

두 제약사는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 시설 확대에 집중해왔다. 릴리는 약 12조원을 투자해 미국과 아일랜드 공장 등 생산 시설을 확충했다. 노보 또한 지난 2월 세계 3대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미국 캐털란트(Catalent)를 약 16조원에 인수했다.

이들 기업이 생산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한 데에는 다른 중소 제약사들이 위고비·젭바운드의 복제약을 제조·판매했기 때문이다. FDA 공급 부족 목록에 오른 약물은 다른 곳에서 복제약을 판매할 수 있다. 릴리의 티르제파타이드 제제가 먼저 목록에서 빠지면서 해당 복제약은 판매가 금지된다. 반면 노보 노디스크는 연말까지 부족 현상이 계속될 전망이어서 계속 복제약이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

공급 리스크에서 벗어난 릴리는 이제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데 속도를 낼 방침이다. 릴리는 티르제파타이드 제제를 비롯해 현재 개발 중인 비만약까지 처방 대상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우선 티르제파타이드는 심부전을 비롯한 심장질환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등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로 개발 중인 오르포글리프론을 기존 비만약의 치료 대상이었던 과체중이나 비만 환자가 아닌 체중 증가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처방 대상을 대폭 넓히기 위해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데이브 릭스 릴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일(현지 시각) “과체중으로 분류되지 않는 체질량 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항비만 약물을 연구할 계획”이라며 “체중 감량보다 환자들의 장기적인 건강 유지를 위해 BMI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젭바운드는 BMI가 30 이상이거나 체중 관련 합병증이 있는 BMI 27 이상인 환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오르포글리프론은 당뇨병 또는 혈관성 치매, 뇌졸중 등 위험이 있는 BMI 25 미만의 사람 대상으로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릭스 CEO는 파이낸셜타임즈(FT)에 “태평양 섬 원주민을 비롯해 특정 인종 그룹의 경우 더 낮은 BMI에서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이 높다”며 “BMI 기준을 낮춰 더 많은 사람들이 비만을 예방하고 합병증을 막을 수 있도록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릴리는 비만 치료제 시장의 확대를 대비해 미국 인디애나주 레바논에 약 6조원을 투자해 2027년 말까지 완공 제조·R&D(연구개발) 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