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다음 달 중순 국내 출시되면서 공급 가격이 4주분 37만원대로 책정됐다. 품목 허가된 지 1년 반만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위고비를 국내 출시하는 유통사는 쥴릭파마코리아로, 다음 달 15일부터 주문 접수를 시작할 예정이다. 위고비는 펜 모양 주사제 형태로 하나당 약 용량이 0.25㎎, 0.5㎎, 1.0㎎, 1.7㎎, 2.4㎎ 등 5가지로 나오는데, 공급 가격은 용량에 관계 없이 37만2025원으로 정해졌다.
위고비는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으로부터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30 이상인 비만이거나, 과체중(BMI 27~30 사이)이지만 한 가지 이상 비만 관련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으로 허가 받았다.
출시 날짜와 공급 가격이 정해지면서 같은 제약사의 삭센다(리라글루타이드)와 알보젠코리아의 큐시미아(펜터민·토피라메이트), 대웅제약의 디에타민(펜터민) 등이 만든 국내 비만약 시장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가 삭센다와 비슷, 실제 비용은 더 클 것
위고비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계열 약물로 피하지방 주사제다. 한 달에 한 번 투여한다. GLP-1 호르몬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소화 속도를 늦춰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는 GLP-1 호르몬을 흉내 내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가 있다. GLP-1 호르몬이 체내에서 몇 분만에 사라지는 것과 달리, GLP-1 유사체 비만약은 몸속에서 일주일 이상 뇌와 장에 작용한다.
같은 회사가 앞서 국내 출시한 비만 치료제 삭센다 역시 GLP-1 유사체 계열 약물이다. 삭센다는 매일 투여해야 해 매주 투여하는 위고비에 비해 번거롭다. 임상시험 결과 체중 감량 효과도 위고비가 평균 10% 이상으로 삭센다(7~8%)보다 크다. 위고비가 훨씬 간편하고 효과가 좋은 셈이다.
국내 유통사에서 내놓은 출하가는 삭센다와 위고비가 비슷하다. 삭센다의 경우 4주분 가격이 30만~50만원대다. 노보 노디스크 관계자는 “한 펜당 가격은 위고비가 삭센다보다 5배 이상 비싸다”면서도 “삭센다는 매일 투여하는 반면, 위고비는 매주 한 번 투여하므로 4주분 가격은 비슷하게 책정된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는 환자가 실제로 내야 할 비용은 위고비가 삭센다보다 훨씬 클 것으로 전망한다. 공급 가격은 비슷하더라도 결국 건강보험 혜택이 없는 비급여 약품이므로 시장 가격을 의료기관마다 다르게 책정할 수 있다. 병원이 공급가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삭센다보다 효과가 좋고 편리한 덕분에 인기를 끌 경우 비용을 더 크게 잡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 위고비 접종 가격은 4주분 약 1300달러(약 170만원)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효과 때문에 전 세계에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반면 덴마크와 일본은 각각 약 45만원, 약 37만5000원이다. 국가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의약품 비용이 각 국가의 보험 제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본은 위고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소비자는 약가의 30% 정도를 부담한다. 하지만 한국은 비만 치료제에 보험을 적용하지 않아, 환자가 내야 할 비용이 일본보다 훨씬 클 전망이다. 삭센다 역시 비급여 제품이다.
◇효과 더 큰 마운자로 국내 출시 앞당겨질까
제약업계는 위고비가 국내 출시되면 이미 시장이 형성돼 있거나 출시를 앞둔 다른 비만약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의약품 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은 1780억원대 규모로 역대 최고치였다. 그중 삭센다가 37.5%로 가장 점유율이 컸고, 그 다음이 큐시미아(19.9%)였다. 큐시미아는 알약형으로 주사제인 삭센다나 위고비보다 환자에게 편리하다. 체중 감량 효과도 평균 10%로 큰 편이다.
위고비는 삭센다보다 편리하고 체중 감량 효과가 커 국내 출시 후 시장 점유율을 크게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세계 시장에서 위고비는 올해 1분기에만 전 세계에서 약 1조 8000억원 매출을 올렸다. 또 위고비는 큐시마아처럼 의존증 같은 심한 부작용이 없고 처방에 제한이 크지 않은 데다, 체중 감량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난다.
큐시미아는 혈압이 오른다는 부작용 때문에 고혈압을 동반한 비만 환자에게는 쓸 수 없다. 게다가 소위 ‘나비약’이라 불리는 향정신성의약품인 펜터민이 들어 있다. 펜터민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원리로 의존증이 생길 수 있어 3개월 이상 처방하지 못한다. 박경희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큐시미아는 펜터민 성분이 소량 들어 있어 장기간 처방이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처방약과 상호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처방에 제한이 크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위고비 출시에 따라 경쟁약인 미국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도 국내 출시가 빨라질 것으로 본다. 마운자로는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았다.
마운자로 역시 GLP-1 유사체 계열 약물로 원래 제2형 당뇨병 치료제인 마운자로라는 약으로 나왔다가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로 발전했다.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체중 감량 효과도 15~20% 이상으로 GLP-1 유사체 계열 약물 중에서도 가장 크다. 국내에서는 당뇨병 치료용이나 체중 감량용이나 모두 마운자로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한국릴리 관계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마운자로에 대한 강력한 수요과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언제 국내에 출시될지 결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보건 당국과 긴밀하게 협력해 국내 제2형 당뇨병과 비만 환자에게 마운자로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