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활명수와 피부연고 후시딘, 감기약 판콜로 잘 알려진 동화약품(000020)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른바 ‘오너 4세’ 경영을 본격화한 뒤 전통 제약사 대신 종합 헬스케어(건강관리)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제약사 경쟁력의 근간인 신약 개발에선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아 기초 체력부터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동화약품은 미래에셋벤처투자PE와 함께 1600억원을 투자해 미용 의료기기 기업 하이로닉(149980) 지분 57.8%를 인수했다. 하이로닉 인수는 동화약품이 현장 실사를 마친 뒤 오는 12월 중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동화약품은 이번 인수에 500억원 이상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화약품은 하이로닉 인수가 미용 의료기기업체 인수를 통한 사업 다각화라고 설명했다. 대웅제약(069620) 같은 국내 대형 제약사가 보툴리눔 톡신 제제 같은 미용 시술 제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처럼, 동화약품도 마진율이 높은 미용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윤인호 부사장, 사업 다각화 노린 투자

하이로닉 인수는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의 장남 윤인호 부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부사장은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13년 동화약품 재경부에 입사했다. 윤 부사장은 일반의약품(OTC) 총괄사업부 상무를 거쳐 2020년 4월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윤 부사장이 주도한 사업 다각화는 이미 몇 차례 진행됐다. 동화약품은 2020년 221억을 투입해 정형외과 의료기기업체 메디쎄이를 인수한 것을 신호탄으로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또 지난해에는 366억원을 투자해 베트남 약국체인 기업 중선파마(TRUNG SON Pharma)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베트남 현지 약국 매장 140여개를 보유한 중선파마를 활용해 활명수와 잇치, 판콜 같은 일반의약품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 목적이다.

제약·바이오 벤처기업의 육성을 고려한 전략적 투자도 단행했다. 의료 인공지능(AI) 개발업체 뷰노(338220)와 치료재(材) 생산기업 넥스트바이오메디컬(389650), 반려동물 건강관리 업체 핏펫에 잇따라 투자했다. 앞서 언급한 기업 인수와 전략적 투자를 합치면 외부투자에 사용한 자금이 1200억원을 넘는다.

윤 부사장의 사업 다각화는 수출액이 크게 늘었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동화약품은 지난 상반기 수출액 46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90억원)보다 5배 높은 수출액을 기록했다.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 칠레에 해외법인을 둔 메디쎄이와 베트남 의약품 유통을 장악한 중선파마의 영향이 컸다.

그래픽=손민균

◇제약사의 ‘기초체력’ 신약 개발은 숙제

윤 부사장의 공격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신약 개발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최근 유한양행(000100)이 국산 신약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문턱을 넘은 사례가 나오면서, 제약사는 신약 개발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반면 동화약품은 매출에서 일반의약품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주력 제품인 활명수류와 후시딘류, 판콜류 비중은 지난 1분기 기준 38%로 절대적이다.

전문의약품을 중심으로 한 신약 개발 성과는 여전히 미진한 상황이다. 개량신약으로 개발 중인 당뇨 치료제 후보물질 DW6013과 DW6014는 현재 임상 1상 시험만 마친 상태다. 항암제인 DW1023은 전임상시험을 마치고 올해 안으로 인체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아직 임상시험 계획 승인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동화약품은 신약 개발이 수익을 내기까지 오래 걸리는 만큼, 한동안 투자한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신약 개발은 오래 걸리는 사업이기 때문에 그 전에 투자한 바이오 벤처에서 성과를 먼저 낼 것”이라면서도 “최근 파이프라인(신약후보군)을 한 번 정리했고,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 개발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