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의약품(RPT) 관련 이미지./DALL·E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방사성 의약품(RPT)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에 시동을 걸었다. 수천억원을 들여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기지를 만들어 패권을 잡는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차세대 의약품 기술로 꼽히는 RPT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326030) 사업개발본부장이 주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노바티스는 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에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을 위한 공장을 건설 중이라고 발표했다. 노바티스는 이번에 발표한 공장 외에도 미국 뉴저지주 밀번과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RPT는 세포를 죽이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질환 표적에 결합하는 물질에 실은 기술이다. 방사성 물질인 RPT는 아주 적은 양을 주입해 암세포를 죽일 수 있어 혁신적인 항암 기술로 꼽힌다. 다만 방사성 동위원소의 짧은 수명과 복잡한 취급 방법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다.

노바티스는 방사성 동위원소 루테튬을 기반으로 하는 RPT 투타테라(성분명 투테튬옥소도트레오타이드)와 플루빅토(비피보타이드테트라세탄)에 대한 승인을 받고 출시했다. 투타테라는 신경내분비종양을, 플루빅토는 전립선암을 치료하는 약물이다. 다만 RPT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방사성 동위원소를 공급받는 데 문제가 있었다.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수요는 높아지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노바티스는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시설에 2억달러(약 2600억원) 넘게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바티스는 미국 공장 3곳 외에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중국, 일본에 생산 시설을 구축해 RPT 패권을 쥐겠다는 계획이다. 노바티스가 지난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제조 승인을 받은 미국 인디애나주 공장은 RPT를 연간 25만회 접종분(도즈)을 생산할 수 있다. 다른 지역의 공장도 비슷하거나 뛰어넘는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RPT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일라이 릴리,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 같은 글로벌 제약사가 관련 회사를 인수할 정도로 차세대 기술로 꼽히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RPT 시장 규모는 2032년 137억달러(약 18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2년(53억달러)보다 2.5배 커진 규모다.

국내에선 SK바이오팜이 노바티스와 RPT 경쟁을 벌이고 잇다. 앞서 SK바이오팜은 집중적으로 개발할 차세대 모달리티(Modality·약물전달기술)로 RPT를 꼽았다. SK바이오팜의 RPT 사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이 주도하고 있다. 최 본부장은 지난 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콘퍼런스콜에서 RPT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질의응답에 나섰다. SK바이오팜은 2027년까지 방사성 의약품 선두 주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SK바이오팜은 RPT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 7월 방사선 치료제 연구·개발(R&D) 기업 풀라이프 테크놀로지로부터 방사성 의약품 후보물질 ‘SKL35501′을 도입했다. 또 최 회장이 3000억원을 투자한 미국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인 테라파워와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225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바이오팜은 악티늄-225를 중심으로 자체 RPT 개발을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