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의 적응증을 심부전으로 확대하기 위해 재도전에 나선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추가 자료를 요청하자 적응증 확대 신청을 철회한다고 밝힌 지 3주 만이다. 비만 치료제 경쟁자인 미국 일라이 릴리가 연말에 먼저 심부전 적응증 확대를 신청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노보 노디스크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30일(현지 시각) 박출률 보존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결과, 심부전 악화 위험을 41% 낮췄다고 발표했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미하일 코시보로드(Mikhail Kosiborod) 세인트루크 미드아메리카 심장연구소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논문으로 공개했다.
심부전은 심장의 구조적이거나 기능적 이상으로 혈액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질환을 말한다. 이번 임상에서는 특히 좌심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보존 심부전에 집중했다. 보존 심부전 환자는 80%가 과체중이나 비만일 정도로 비만과 밀접한 질환이다.
위고비는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를 기반으로 하는 비만 치료제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위나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사 후 포만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모방한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도 포만감을 높인다. 원래 같은 성분으로 당뇨 치료제 오젬픽을 개발했으나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위고비가 나왔다.
연구팀은 보존 심부전 환자 3743명에게 위고비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했다. 환자는 ‘동맥경화성 심혈관 질환과 과체중·비만’, ‘2형 당뇨병과 만성 신장 질환’이 있는 집단으로 나뉘었다. 연구팀은 동맥경화성 심혈관 질환과 과체중·비만 환자들에게는 2.4㎎, 2형 당뇨병과 만성 신장 질환자에는 1㎎ 세마글루타이드를 주 1회 투여했다.
시험 결과,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약한 환자는 위약(僞藥)을 투여한 대조군보다 심혈관 사망과 심부전 악화 위험이 31% 줄었다. 보존 심부전만 놓고 보면 악화 위험이 41%까지 낮아졌다. 보존 심부전 발생률도 위약 대조군은 7.5%이었지만,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는 5.4%로 줄었다.
이번 임상 결과는 위고비 적응증을 심부전으로 확대하려는 노보 노디스크의 의지를 나타낸다. 노보 노디스크는 내년 초 이번 임상 결과를 포함해 적응증 확대 신청서를 미 FDA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앞서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달 7일 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위고비의 심부전 적응증 확대를 위한 FDA 승인 신청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FDA는 적응증 확대를 심사하면서 노보 노디스크에 임상시험 규모가 적다며 추가 데이터를 요구했다.
심부전은 인구 고령화와 비만 인구 증가에 따라 환자가 늘고 있다. 한국만 보더라도 국내 심부전 환자 수는 2021년 기준 15만8917명으로, 2017년(12만3928명)과 비교해 28.2% 늘었다. 하지만 보존 심부전을 적응증으로 FDA 승인을 받은 치료제는 스위스 노바티스의 엔트레스토, 독일 베링거 인겔하임과 일라이 릴리의 자디앙 정도다.
일라이 릴리도 위고비와 경쟁 중인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티드)의 적응증을 심부전으로 확대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지난달 보존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시험에서 심부전 위험을 최대 38% 줄였다고 설명했다. 일라이 릴리는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연말 적응증 확대 신청에 나설 예정이다.
참고 자료
The Lancet(2024), DOI: https://doi.org/10.1016/S0140-6736(24)01643-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