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이 지난 2019년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된 '2019 바이오플러스'에서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뉴스1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이 지난 27일 임원회의에서 “신입사원을 비롯한 저연차 직원들에게 저녁 먹고 퇴근할 정도로 일 많이 시키고, 일이 없으면 교육이라도 시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 사이에서 적당히 일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업무 시간을 늘리는 극단 조치로 근무 태도를 바로잡은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그룹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회사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고 사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입사 초기(1~3년차)에 개인의 장래와 회사 경쟁력 제고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며 “현재의 근무시간은 개인·회사 경쟁력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고 사장의 지시사항에는 “임원·팀장 책임 및 관리 하에 반드시 준수할 것”이라는 문구도 담겼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이런 모습는 최근 임직원들의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를 줄인 말로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춤)’을 강조하는 다른 제약·바이오 기업들과 다르다. 셀트리온(068270), 유한양행(000100), 종근당(185750), 대웅제약(069620), HK이노엔(195940), 동아제약 등 대부분 제약·바이오 기업은 연차 사용이 자유롭고, 징검다리 연휴에도 쉴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요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젊은 인력이 버티겠냐”며 “삼성바이오에피스 같은 바이오 분야는 전통 제약사보다 평균 연령이 낮아 MZ세대가 비율이 높을 텐데, 반발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들은 고 사장의 지시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 “믿기 힘들다”, 지금 같은 시대에 실화?”, “이미 알아서 8 to 8(오전 8시~오후 8시) 출근 시키는 부서도 늘고 있다” 등의 글을 올렸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미혼인 신입사원 때가 제대로 일을 배울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하여 내린 지시”라며 “현재 유연근무·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52시간 제도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고 사장이 직원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이 같은 지시를 한 것은 국내 대기업들의 비상경영과도 관계가 있지만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국내외 경쟁사는 물론, 오리지널 신약 개발사들과도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장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된다.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의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특허 분쟁이 대표적이다. 리제네론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비롯한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에게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바이오시밀러 회사로선 특허 분쟁으로 출시 일정이 밀리고 소송 비용이 증가하는 위험이 생긴 상황이다.

업계는 삼성그룹이 바이오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것이라고 본다. 이 점에서 바이오시밀러뿐 아니라 바이오 신약 개발 사업에 본격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은 미래 주력 사업인 바이오와 반도체 생산 현장을 직접 챙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바이오산업을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뒤 2011년과 2012년 각각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을 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와 신약 연구개발(R&D)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그동안 큰 폭으로 성장했다. 2012년 창립 후 12년 동안 총 8종의 블록버스터급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회사의 올 상반기 매출은 8100억원, 영업이익은 2952억원으로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 278% 늘었다.

회사 출범 후 줄곧 대표를 맡고 있는 고 사장은 평소 업계에서도 이번처럼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는 인물로 통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고한승 사장이 기본과 원칙 중심의 업무 방식과 데이터, 프로세스 기반의 의사결정 시스템 등의 기업문화를 조성하며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켰다”며 “이러한 리더십과 성과를 바탕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실적도 빠르게 성장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