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하며 '먹는 치료제'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사진은 화이자 팍스로비드(오른쪽)와 미국 머크(MSD)의 라게브리오(왼쪽)./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퍼지면서 치료제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보건당국은 급히 미국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머크(MSD)의 라게브리오 등 항바이러스제 17만7000명 분량을 국내에 들여왔지만, 지금처럼 외국 약품에만 의존하다간 언제든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제약업계는 국내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19 치료제가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기대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는 신풍제약(019170)현대바이오(048410)사이언스, 일동제약(249420)이다. 신풍제약은 지난 5월 코로나19 치료제 피라맥스정(성분명 피로나리딘인산염·알테수네이트)에 대한 글로벌 임상 3상 시험 결과를 유럽 임상미생물학·감염질환학회에서 발표했다. 원래 말라리아치료제로 개발됐던 피라맥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세포 침투와 RNA 복제를 차단해 증식을 막는다고 회사는 밝혔다.

신풍제약은 지난해 성인 환자 14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에서는 유효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임상시험에서는 코로나19 증상이 발생한 지 72시간 이내 복용하면 증상이 사라지는 시간이 약 11일로, 위약 대비 이틀이나 단축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또한 29일째까지 증상이 있는 환자의 비율은 피라맥스군이 위약대비 24.6%나 적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식약처에 피라맥스에 대한 품목허가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풍제약이 개발에 성공한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 정제와 과립

현대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제프티(성분명 니클로사마이드)는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다른 항바이러스제와는 달리 세포의 오토파지(자가포식) 활동을 촉진해 바이러스를 분해하는 원리다. 니클로사마이드는 이미 60년 이상 구충제로 복용해온 약물인 만큼 안전성도 확보했다. 2022년 12월 임상 2상 시험을 마친 상태다.

지난 6월 현대바이오사이언스가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2023 미생물연차총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제프티를 복용한 환자군은 혈중 농도에 따라 바이러스 수치가 비례해 줄어들었다. 복용한 지 16시간 만에 바이러스 수치가 56.65%나 줄었다. 위약은 4.1% 줄어드는 데 그쳤다. 또한 발열, 기침 등 코로나19 주요 감염 증상이 줄어드는 시간은 위약군보다 4일이나 단축됐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에 따르면 니클로사마이드는 코로나19 외에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독감(인플루엔자바이러스),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 바이러스 31종 감염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다. 이 약이 출시되면 세계 최초로 범용 항바이러스제가 탄생하는 셈이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27일 식약처에 임상 3상 시험 계획을 신청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고위험군 중에 경증·중등증 코로나19 증상을 보인 환자 290명을 대상으로 제프티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평가할 예정이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미국 미생물학회(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 연례 학술대회에서 코로나19 치료제 '제프티'(CP-COV03)의 임상2·3상 결과를 발표했다./현대바이오 제공

일동제약은 일본 시오노기제약과 공동 개발한 조코바(성분명 엔시트렐비르푸마르산)에 대한 임상시험 진행과 판권을 갖고 있다. 조코바는 지난해 3월 일본에서 승인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진 단백질 분해효소( 3CL-프로테아제)를 방해해 몸속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것을 억제하는 원리다.

시오노기제약과 일동제약은 지난해 1월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에서 2900여명을 대상으로 임상 2/3상 시험을 진행했다. 조코바를 복용한 군은 발열과 기침, 인후통, 콧물, 피로감 등 주요 증상이 사라지는 데 167.9시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약군 192.2시간 대비 1일 단축한 셈이다. 바이러스의 RNA 양 역시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12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고 승인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일본에서 허가를 받은 엔시트렐비르(일본명 조코바).(시오노기 제공)/뉴스1 ⓒ News1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하자 치료제 개발사들의 주가가 급상승했다. 국산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면서 그 동안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지만 최근 환자가 늘어난 것처럼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재유행할 것”이라며 “안정적으로 치료제를 공급하기 위해서 외산 치료제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국산 치료제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산 코로나19 치료 후보물질들은 아직 임상시험을 다 마치지 못했거나 최근에야 승인 신청을 낸 상황이어서 식약처로부터 승인받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동제약의 치료제는 일본에서 허가를 받았고 국내 허가 신청도 지난해 말에 냈지만 아직도 심사 중이다. 그만큼 국산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오기까지 아직은 멀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