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와 mRNA, 백신 주사기 이미지.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돌기를 만드는 mRNA를 인체에 주사해 면역반응을 유발한다./미 오리건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막아낸 메신저리보핵산(mRNA·messenger RNA) 백신이 암과 희소질환 치료까지 확장되고 있다. 정부가 관련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면서 mRNA 백신 국산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코로나19가 퍼지면서 미국 화이자와 모더나가 mRNA 백신 포문을 열었지만 아직 국내에서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27일 공개된 2025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가 처음으로 mRNA 백신 기술 개발 사업을 신설하고, 총 2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mRNA 백신 사업은 2028년까지 기업 중심으로 비임상부터 임상 3상 시험까지 연구개발(R&D)을 지원해 품목허가를 받도록 하는 사업이다. mRNA 백신 개발 전과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전날 정부는 mRNA 백신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를 확정했다. 예타는 정부가 대규모의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에 대해 적합성과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다.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경우 예타를 받아야 한다. 다만 일부 시급성이 필요한 사업은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

정부가 mRNA 백신 국산화를 지원하는 것은 고부가가치가 기대되는 첨단 기술이기 때문이다. mRNA 백신은 감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나 암세포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물질인 mRNA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이다. 유전 정보만 알면 바로 제조가 가능해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나 바이러스의 단백질(항원)로 만드는 기존 백신보다 감염병 대응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mRNA 백신은 제조까지 2~3주가 걸리는데, 기존 단백질 기반 백신은 3~4개월 정도 소요된다.

질병관리청 mRNA 백신 국산화 테스크포스(TF) 관계자는 “mRNA는 병원체의 유전정보만 알면 바로 백신 개발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며 “mRNA 백신 플랫폼을 확보해 두면 면역반응을 유발한 항원만 교체해 새로운 백신 개발이 가능해 인플루엔자·코로나 바이러스 등 변이가 자주 발생하는 감염병 대응에 매우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코로나 백신부터 국산화할 계획이다.

국내외 기업과 연구기관들은 mRNA 기술을 접목한 암, 심장질환, 자기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mRNA 코로나 백신 상용화에 처음 성공한 미국 모더나와 화이자·바이온텍이 mRNA 암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mRNA로 인체에서 암세포 표면의 단백질(항원)을 만들어 면역반응을 촉진해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원리다.

바이온텍은 지난 20일부터 영국에서 비소세포폐암(非小細胞癌) mRNA 백신 BNT11의 임상 1상 시험을 위한 첫 환자 투여를 시작했다.

앞서 바이온텍은 화이자와 함께 개발한 암 백신 CARVac의 임상시험 결과를 지난해 10월 공개했다. 고환암, 위암, 난소암 등 고형암에 걸린 환자들이 참여했다. 모더나도 미국 머크(MSD)와 함께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백신 mRNA-4157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가 CEPI(전염병대비혁신연합)의 지원을 받아 일본뇌염 바이러스와 라싸열 바이러스에 대한 mRNA 백신을 개발 중이다. GC녹십자(006280)는 mRNA 기술을 적용한 독감 백신 후보 GC3117A뿐아니라 희소질환, 항암백신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21년 전체 R&D 비용의 5% 수준이던 mRNA 플랫폼 투자 비용을 2023년 23%로 확대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의 원료의약품 자회사인 에스티팜(237690)차바이오텍(085660) 계열사인 차백신연구소와 mRNA 의약품 공동 개발에 나섰다. 에스티팜이 mRNA 기술을 어떤 질환에 적용할지 정하고 후보물질을 도출하면 차백신연구소가 임상시험을 포함해 모든 개발 과정을 총괄한다. 2026년부터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차백신연구소는 치료제 상업화 권리를, 에스티팜은 치료제 독점 생산·공급권을 갖게 된다.

mRNA 암백신 원리/조선DB

국내에서 mRNA 암백신 R&D도 이뤄지고 있다. 한미약품(128940)은 mRNA 기반의 암백신 후보인 HM99462를 개발 중이다. HM99462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 중 치명적인 KRAS1 변이를 공략한다. KRAS는 다양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폐암, 대장암, 췌장암 등을 유발한다. 회사에 따르면 KRAS 변이 비소세포폐암에 걸린 생쥐에 mRNA 암백신을 투여한 결과 37%까지 종양 성장이 억제됐다.

디엑스앤브이엑스(DXVX)도 독자적으로 설계 합성한 원형 mRNA 항암 백신 후보물질을 전임상 단계에서 시험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인공지능(AI)으로 mRNA 암백신의 효과를 높일 항원을 발굴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mRNA 백신 기술 국산화에 성공하면 의약품 수입 의존도를 낮춰 감염병 대응과 보건 안보를 강화할 수 있으며, 동시에 글로벌 시장도 개척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1세대 mRNA 백신보다 혁신을 이룬 차세대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mRNA를 활용한 다양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과 국내 기업들의 도전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