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당뇨 치료제 오젬픽을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 처방할 경우 자살 충동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위고비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없어서 못 파는 사태가 벌어진 만큼, 앞으로 자살 관련 부작용 사례도 늘어날 수 있다.
코라도 바르부이(Corrado Barbui) 이탈리아 베로나대 정신과 교수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 사례를 추적 분석한 결과, 자살 사고 징후가 발견됐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AMA) 네트워크 오픈’에 지난 20일 발표했다.
위고비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를 기반으로 하는 비만 치료제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위나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사 후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이를 모방한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도 포만감을 높인다. 원래 같은 성분으로 당뇨 치료제 오젬픽을 개발했으나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위고비가 나왔다.
연구팀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개별 사례 안전보고서(ICSR)라는 대규모 약물 감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연구팀이 조사한 데이터는 모두 3617만2078건이다. 위고비와 오젬픽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와 비만 치료제 삭센다의 주성분 리라글루타이드의 자살 부작용 사례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조사했다.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 관련 부작용의 ‘불균형성’이 유의미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불균형성 분석은 약물 부작용을 감시할 때 사용되는 통계적 방법으로, 특정 부작용이 특정 약물과 얼마나 연관되는지를 다른 약물과 비교해 평가한다.
WHO 보고서 중 약물 부작용 사례는 세마글루타이드가 3만527건, 리라글루타이드가 5만2131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부작용 중 자살 관련 사례는 세마글루타이드가 107건(0.35%), 리라글루타이드가 162건(0.31%)으로 나타났다. 특히 처방 기간이 세마글루타이드는 13년(2011~2023년), 리라글루타이드는 24년(2000~2023년)으로 두 배 가까이 차이 난다는 점에서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 관련 부작용이 두드러졌다.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 부작용 사례는 구체적으로 자살 충동 88%, 의약품 과복용 7%, 자살 시도 7%로 확인됐다. 부작용 사례자 107명 중 7%는 자살 시도와 자살 충동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세마글루타이드 치료 시작부터 자살 사고 발생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80.39일이다.
특히 세마글루타이드는 항우울제와 함께 복용할 때 자살 충동 부작용이 다른 약물들보다 4배 이상 컸다. 연구팀은 “리라글루타이드와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 다파글리플로진·메트포르민, 비만 치료제 오를리스타트와 비교했을 때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자살 부작용이 세마글루타이드에서 4.45배 더 심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비만 치료제가 자살 충동을 높인다는 연구는 이전에도 나왔다. 다만 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의 자살 영향에 대해선 아직 연구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비만 치료에 승인된 위고비 라벨에는 의료진이 환자의 자살 시도를 감시해야 한다는 경고가 붙어있기도 하다.
노보 노디스크는 성명을 통해 “(자살 충동) 위험과 관련해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 승인 제품 라벨에 반영했다”며 “치료 안전성을 감시하기 위해 규제기관과 계속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자의 병력과 진단 변수를 통제하지 못한 연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바르부이 교수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규제기관들이 자살 관련 위험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위고비나 오젬픽의 불법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며 “이들이 자살과 같은 부작용에 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JAMA Network Open(2024), DOI: https://doi.org/10.1001/jamanetworkopen.2024.23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