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워치츠키 유튜브 최고경영자. 비소세포폐암으로 유투브를 떠난 지 1년 반만에 사망했다./블룸버그

‘구글의 대모’로 불리던 수전 워치츠키(56) 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가 폐암 투병 끝에 숨졌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워치츠키 남편 데니스 트로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워치츠키가 비소세포폐암으로 2년 동안의 투병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알렸다. 폐암은 암세포 크기에 따라 소세포암(小細胞癌)과 비소세포암으로 나뉘는데, 비소세포암은 전체 폐암의 80%가량을 차지한다.

워치츠키가 건강 문제로 유튜브를 떠난 건 2023년 2월이다. 당시 그는 유튜브 공식 블로그에 “여기(구글)에서 거의 25년을 보낸 오늘 유튜브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가족과 건강, 개인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비소세포폐암은 얼마나 위험하길래 그렇게 빨리 목숨을 앗아갔을까. 조기 진단과 치료는 가능할까.

◇폐암 환자 10명 8명이 비소세포폐암

폐암은 한국인 남성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종이다. 여성에서는 유방암, 갑상선암, 대장암에 이어 4번째로 많이 발생한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2022년 국내 암 사망률 1위는 폐암이었다. 폐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없다. 이에 폐암 조기 발견이 어렵다.

하지만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생존율과 치료 예후도 향상되고 있다. 폐암의 5년 생존율(2017~2021년)은 38.5%에 그치지만, 의학계 전문가들은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치료 성적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고 말한다. 2023년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2006년~2010년)은 16.6%였다.

전체 폐암 환자 10명 중 8명 이상은 비소세포폐암이다. 비소세포폐암은 다시 선암, 편평상피세포암, 대세포암, 기타 등으로 세분화해 구분한다. 선암은 여성과 비흡연자에서 가장 흔한 유형의 폐암이다. 기관지와 멀리 떨어진 폐 주변부에서 흔히 발생한다.

편평세포암은 남성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며 흡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관지 내부와 주변에 흔히 발생한다. 기침, 객혈, 쌕쌕거리는 숨소리 등의 증상을 보인다. 대세포암은 폐표면 근처에서 주로 발생한다. 암세포가 대체로 크고 증식·전이가 빠른 경향이 있어 다른 비소세포폐암들보다 예후가 안 좋은 편이다.

비소세포폐암과 소세포폐암 구분. /분당서울대병원

◇표적항암제 이어 면역항암제까지 개발

비소세포폐암 치료는 1990년대까지 1세대 항암 치료로 분류되는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을 주로 이용했다. 2000년 초반 암세포만 공략하는 2세대 표적항암제가 등장하면서 암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표적항암제는 기존 항암요법보다 효과가 뛰어나며, 부작용도 덜하다.

표적항암제를 쓰려면 암 조직 시료 또는 혈액의 유전자를 검사해 치료 대상 환자를 선별하는 게 우선이다. EGFR, ALK, ROS1, BRAF/MEK 등 유전자 변이가 다양한데, 이런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면 그에 맞는 표적치료제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전자 변이가 EGFR 변이다. 특히 아시아인 비흡연 환자에서 발생 빈도가 가장 높다. 이 경우 표적항암제인 EGFR 억제제를 쓴다. 비소세포폐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가 없으면 기존 화학항암 치료, 또는 면역치료제와 같이 쓰는 복합요법을 사용한다.

3세대 항암치료로 분류되는 면역항암제는 암세포 자체를 공격하는 일반 항암제와 다르게 암 환자의 면역세포를 강화시켜 암세포와 싸우게 한다. 미국 머크의 키트루다, 오노약품과 BMS가 공동 개발한 옵디보, 로슈의 티쎈트릭,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 등이 대표적인 비소세포폐암 면역항암제이다.

얀센은 렉라자의 글로벌 판권을 사들여 자사의 표적항암제인 리브리반트와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유한양행 치료제 미국 허가 초읽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현재까지 EGFR 억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승인한 약물은 아스트라제네카의 타크리소·이레사, 제넨텍의 엘로티닙, 베링거인겔하임의 질로트리프, 화이자의 비짐프로, 다케다의 엑스키비티, 얀센 리브리반트 등 7개다. 암 치료의 바이블로 불리는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는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타그리소를 권고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 유한양행은 얀센과 손 잡고 국내 31번째 신약 ‘렉라자(레이저티닙)’로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렉라자는 폐암 세포의 성장에 관여하는 EGFR 수용체의 신호 전달을 방해해 폐암 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3세대 표적항암제로, 하루 80㎎씩 3알을 복용하는 경구 치료제다. 2021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았으며 올해 1월부터 1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됐다.

유한양행은 2018년 얀센에 12억 5500만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로 렉라자를 기술 수출했다. 얀센의 모회사인 미국 존슨앤드존슨은 지난해 12월 FDA에 렉라자와 자사 폐암 신약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을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허가해 달라고 신청했다. 이달 중 FDA 허가 여부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이번에 승인되면 렉라자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첫 번째 국산 항암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