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면서 없어서 못 파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위고비와 성분이 같은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까지 비만 치료 목적으로 쓰려고 해 일부 국가에서는 처방을 제한하기도 했다.
위고비와 오젬픽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미국에서 비만 치료의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연구진이 위고비와 오젬픽 처방을 살펴보니 대부분 사보험에서 나왔다. 저소득층과 장애인이 주로 가입한 공보험이 비만 치료제를 보장해주지 못하면서 비만에도 불평등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디마 카토(Dima Qato)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임상약학부 교수 연구진은 “미국 의료보험 메디케이드(Medicaid)와 연방정부 의료보험 메디케어(Medicare) 사용자들의 오젬픽, 위고비 사용량이 사보험보다 적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 2일 ‘미국의사협회(JAMA) 건강 포럼’에서 발표했다.
위고비는 덴마크 제약사인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를 기반으로 하는 비만 치료제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위나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사 후 포만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모방한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도 포만감을 높인다. 원래 같은 성분으로 당뇨 치료제 오젬픽을 개발했으나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위고비가 나왔다.
연구진은 의약품 데이터 분석 업체 아이큐비아(IQVIA)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집계한 미국 소매 약국의 세마글루타이드 처방 횟수를 사보험과 메디케이드, 메디케어로 나눠 월별로 조사했다. 메디케이드는 저소득층과 임산부,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의료보험제도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이다.
미국의 세마글루타이드 처방 건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255만 5308회로, 2021년 1월(47만 1876회)보다 442% 늘었다. 오젬픽은 같은 기간 처방 건수가 392% 늘었다. 특히 위고비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2021년 6월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처방이 무려 1361% 폭증했다. 위고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나 할리우드 배우 킴 카다시안 같은 유명인들이 효과를 봤다는 뉴스가 퍼지면서 눈에 띄게 처방이 늘었다.
보험별로는 오젬픽과 위고비를 사보험으로 처방받은 비율이 높았다. 오젬픽의 경우 사보험 처방 비율이 전체의 61.4%를 차지했다. 위고비는 전체 처방 중 89.5%가 사보험으로 지급됐다. 반면 공보험인 메디케어 처방률은 오젬픽 28.5%, 위고비 1.2%에 그쳤다. 메디케이드 같은 경우는 두 치료제 모두 처방이 10% 미만을 기록했다.
연구진은 비만 치료제 처방이 사보험에 집중되면서 약물 접근성의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약물로 치료받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젬픽은 한 달에 1000달러(136만원), 위고비는 1350달러(183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최근 미국의 체중 감량 약물에 대한 공공 지출이 증가했지만, 위고비 처방은 사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며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제한이 필수 약물에 대한 접근성 격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비만 치료제를 둘러싼 불평등 문제는 국내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국내 보험사들이 국민건강보험이 지원하지 못하는 면역항암제를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기도 했는데, 비만 치료제에서도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고비는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상태로, 연내 출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GLP-1 계열인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로 국내에서 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제약업계는 비만 치료제가 국내에 출시돼도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다른 신약들도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비만 치료제에 급여를 적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다 보니 가격 협상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