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가 알츠하이머 치매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기억과 인지 능력을 조절하는 뇌 부위가 수축되는 속도를 늦춰 치매 진행 속도를 막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진은 30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협회 국제 학술대회에서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를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투여하면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18% 느려졌다고 밝혔다.
마리아 카리요 알츠하이머협회 최고과학책임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양상을 바꿀 수 있는 더 많은 옵션이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며 “우리는 알츠하이머병 진행을 늦추고 예방할 수 있는 ‘약속의 시대’에 있다”고 평가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전 세계 치매 환자 5500만 명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신경세포 안밖에 이상 단백질들이 축적되면서 기억력과 학습력 같은 인지 기능이 손상된다.
연구진은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 204명을 모집해 소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참가자 절반에게는 삭센다의 주요 성분인 리라글루타이드를 투여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가짜약(위약)을 투여한 후 1년 뒤 뇌 기능의 변화를 평가했다.
연구진은 당초 리라글루타이드가 뇌의 포도당 대사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포도당은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이다. 뇌가 포도당을 많이 썼다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리라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와 위약을 투여한 환자 사이에서 뇌의 포도당 대사율은 차이가 없었다.
반면 뇌 조직의 수축을 막는 효과는 확인됐다. 리라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는 기억, 학습, 언어 능력을 제어하는 뇌 부위의 수축이 50% 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뇌 수축은 알츠하이머병의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리라글루타이드는 뇌 수축을 막아 인지 기능 저하도 막았다. 리라글루타이드를 투여한 환자는 기억력, 이해력, 언어력, 공간지각 능력을 확인하는 인지 기능 검사에서 위약을 투여한 환자보다 인지 기능 감소율이 18%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임상시험 결과에서 리라글루타이드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막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폴 에디슨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교수는 “뇌 수축이 느려진다는 것은 리라글루타이드가 뇌를 보호한다는 의미”라면서도 “리라글루타이드는 뇌의 염증을 줄이고, 아밀로이드 베타와 같은 단백질의 독성을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삭센다의 성분인 리라글루타이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이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위나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사 후 포만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모방한 리라글루타이드도 포만감을 높여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인다. 노보 노디스크의 당뇨·비만 치료제인 오젬픽, 위고비도 GLP-1 유사체 약물이다.
전문가들은 삭센다의 효과를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임상시험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현재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3000여명을 대상으로 같은 GLP-1 유사체인 세마글루타이드의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당뇨·비만 치료제인 오젬픽, 위고비의 주 성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