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국산 보툴리눔 톡신 수출이 크게 늘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 시장 수출액이 지난해와 비교해 50% 넘게 늘었다. 2분기는 미용 의료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성수기라, 업계에선 역대 최대 실적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은 식중독을 유발하는 보툴리눔균(菌)에서 추출한 독성 단백질로, 약한 근육 마비를 일으켜 주름을 펴고 눈 떨림을 없애는 효과를 낸다.
17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 데이터를 통해 집계한 결과 올해 상반기 국산 보툴리눔 톡신 수출액은 1억 9421만달러(약 2683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기별 수출 실적 기준 역대 최대다. 작년 상반기 수출액은 1억 6639만달러(이하 현재 환율 적용 기준 약 2299억원), 하반기 수출액은 1억 8662만달러(약 2578억원)이었다.
특히 올해 상반기 미국·중국·일본 수출 실적이 크게 증가했다. 상반기 국산 보툴리눔 톡신의 미국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 늘어 3564만달러(약 492억원)로 집계됐다. 중국 수출액은 3592만달러(약 496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3%, 일본은 1527만달러(약 211억원)로 45% 늘었다.
업계는 한국 보툴리눔 톡신 제품에 대한 해외 시장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각국의 규제 관문을 통과하면서 현지 파트너사와 영업·마케팅을 확대하며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대웅제약(069620)의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는 수출이 계속 늘면서 회사 실적 성장을 견인하는 주요 제품으로 떠올랐다. 나보타는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아 국산 보툴리눔 톡신으로 처음 미국에 진출했다. 미국 파트너사인 에볼루스를 통해 ‘주보’라는 상품명으로 판매 중이다.
하나증권은 대웅제약의 2분기 실적 전망 보고서에서 나보타의 2분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9.1% 늘어 552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북미 시장 2분기 수출이 405억원으로, 다시 크게 성장하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3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에볼루스의 매출 대부분이 주보에서 나오는데, 이 회사는 올해 매출을 최대 2억 6500만달러(약 3661억원)로 전망했다.
나보타는 지난달 아르헨티나 당국의 규제 허들을 넘었다. 국산 보툴리눔 톡신으로 역시 첫 아르헨티나 시장 진입이다. 아르헨티나 현지 수출명은 ‘클로듀’다. 대웅제약은 “올해 4분기 현지 유통·판매를 담당하는 파트너사 옥사파마를 통해 아르헨티나에 클로듀를 발매할 것”이라며 “옥사파마가 히알루론산 필러, 스킨부스터 등 다양한 에스테틱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2030년까지 나보타 단일품목 매출 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휴젤(145020)의 보툴리눔 톡신 ‘레티보(수출명)’도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중국에 보툴리눔 톡신 수출이 재개돼 수출 실적 반등이 예상된다. 작년 4분기 최대로 선적한 영향으로 지난 1분기에는 중국 보툴리눔 톡신 수출 실적이 없었다. 다올투자증권은 휴젤은 올해 2분기 호주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 보툴리눔 톡신 수출 매출액이 전분기 대비 62%, 1년전보다 30% 늘어 165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하반기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휴젤은 3년 내 약 10%의 시장 점유율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레티보는 지난 3월 미국 FDA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아 이달 말 첫 출고할 예정이다. 지난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피부미용 전시회에서 레티보 출시를 발표했고, 미국 진출을 위한 초도 물량 생산도 마쳤다. 국산 보툴리눔 톡신의 미국 시장 진입은 대웅제약에 이어 휴젤이 두 번째이다.
휴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미용의료 기업 베네브(BENEV)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미국 시장에서 직접 판매 대신 현지 파트너사를 통한 영업 전략을 펼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른 경쟁사처럼 판매·유통의 권리를 파트너사에 모두 위임하는 구조가 아니라, 미국 보툴리눔 톡신 사업의 동반자로서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축적해온 학술 마케팅 역량과 호주·캐나다에서 톡신 사업을 성공한 전략을 최대한 활용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파마리서치(214450), 종근당(185750)도 자회사 파마리서치바이오, 종근당바이오를 통해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 뛰어들었다. 종근당바이오는 자체 개발한 보툴리눔 톡신 제제 CKDB-501A에 대한 국내 임상 3상 시험 결과를 토대로 지난 5월 ‘타임버스주 100단위’에 대한 품목 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앞서 파마리서치바이오는 지난 2월 보툴리눔 톡신 ‘리엔톡주 100단위’의 국내 품목 허가를 받았다.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 뛰어드는 국내외 기업들이 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은 균주가 확보되면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비용이 많이 들고 개발까지 오래 걸리는 신약에 비해 빠른 캐시카우(현금창출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제약·바이오 기업에는 큰 매력으로 꼽힌다.
백신 사업을 하던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도 중장기적으로 미용의료 산업 진출을 꾀하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는 취지가 깔려있다. 이 회사가 최근 인수한 독일 IDT 바이오로지카(IDT Biologika)는 멀츠의 보툴리눔 톡신 ‘제오민’ 완제를 위탁 생산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치료용으로 확대되면서 시장 규모도 2022년 72억 1000만달러(약 9조 9599억원)에서 2032년 179억 8000만달러(24조 8412억원) 규모로 연평균 9.56%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미국 엘러간이 열었다. 엘러간의 ‘보톡스’는 1989년 세계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보툴리눔 톡신이다. 나중에 엘러간이 애브비에 흡수 합병되면서 이제는 애브비의 제품이 됐다. 제품명 보톡스가 보툴리눔 톡신의 동의어가 됐을 정도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애브비의 지난 한해 보톡스 매출은 14억 9000만 달러(약 2조 586억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