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가 21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임종윤 측 제공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일가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가 모친인 송영숙 회장과 동생인 임주현 부회장이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에게 지분을 매각하고 한미약품을 공동 경영하기로 밝힌 것에 대해 법적 조치를 시사했다.

4일 임종윤 이사 측 관계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가능한 법적 조치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전날 저녁 한미사이언스에 관련 공시를 올리고,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6.5%(444만 4187주)를 신 회장에게 매도하고, 이사회 구성과 의결권 공동행사, 동반매각참여권을 갖는 약정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다.

임종윤 이사는 모녀 측이 한미사이언스 공시를 위반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미사이언스에 공시가 됐는데, 한미사이언스의 이사진으로 참여하는 임종윤종훈 형제는 보고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송 회장과 신 회장이 지분 매매 계약을 맺은 것 자체에는 법적 조치가 어렵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3차전에 돌입했다. 한미약품그룹은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이 별세한 이후 부과된 상속세 문제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올해 초 임 회장의 유산을 상속받은 부인 송영숙 회장과 딸 임주현 부회장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아들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OCI그룹과 통합에 반발하자, 모친인 송 회장은 한미약품 경영진으로 참여했던 형제를 해임했고, 형제는 지난 3월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주총회에서 표 대결 끝에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때 형제의 손을 들어 준 것이 신 회장이고, 이번에 모녀와 손을 잡은 것도 신 회장이다.

임종윤 이사는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신 회장에게 지분을 매각하는 정황은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모친과 여동생이 수천억원 규모의 상속세 문제를 풀 해법을 도저히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데, 신 회장이 문제 해결에 나서기로 했고,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형제가 문제 삼은 것은 모녀 측과 신 회장이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밝힌 ‘전문경영인 체제’ 부분이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형제들이 경영권 빼앗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형제는 지난 3월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승리하며 한미사이언스 경영권을 확보했지만, 아직 한미약품의 대표이사 자리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그래픽=정서희

형제는 지난 6월 18일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두 사람을 한미약품 이사로 선임했다. 이들은 주총이 열린 날 오후 이사회를 열고 임종윤 단독 대표이사로 선임할 계획이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임종윤 대표 체제에 찬성하는 등기이사가 과반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자, 이사회를 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임종윤 이사는 이달 중순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 교체를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윤 이사 측에 따르면 형제는 모녀 측 지분을 매입하고 글로벌 펀드에 매각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 속성 때문이다. 한미사이언스의 지분은 임종윤·종훈 형제와 특수 관계자가 28.42%,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16.77%를 갖고 있다. 둘의 지분을 합하면 45%가 넘지만 과반은 되지 않는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경영권 분쟁 중인 회사의 지분 45%를 매입하는 것은 모험이다. 과반을 만들려면 모녀 측의 지분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모녀 측과 지분 매입 논의도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차남인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 주도로 어머니인 송영숙 회장을 임시이사회에서 해임하면서 가족 간 갈등이 더 불거졌다. 이번에 송 회장과 신 회장이 손을 잡으면, 이들의 지분은 48.19%로 의결권 과반에 육박한다. 형제 측보다는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모녀는 이번 계약으로 상속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번 계약에 따라 모녀는 지분매각이 마무리되는 오는 9월 약 1644억원을 현금으로 받는다. 모녀가 해결해야 할 상속세는 15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지분 매각으로 한미약품의 실질적인 경영권은 신동국 회장이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